[ 손정희 기자 ]
인류와 황금은 4000년 전 금이 최초로 발견된 후 역사를 함께 만들어왔다. 고대 이집트는 풍부한 황금을 바탕으로 문명의 꽃을 피웠고, 페르시아 제국과 로마 제국도 황금을 기반으로 거대 제국을 건설했다. 스페인은 신대륙으로부터 유입된 금과 은을 통해 16세기 세계의 지배자로 올라섰고, 영국의 ‘해가 지지 않는 제국’ 건설에도 금본위제가 절대적 역할을 했다. 금은 인간의 탐욕에 불을 지펴 무수한 전쟁을 일으키고, 신대륙을 향한 골드러시가 이어지게 만들기도 했다. 인류 문명을 창조하는 데 일조하고 탐욕을 조장하기도 한 황금. 금을 향한 인류의 예찬은 고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불변의 가치를 지닌 황금이 뉴욕에서 유럽으로 대이동을 한다. 70여년 전 안전한 보관을 위해 유럽의 중앙은행이 위탁보관하여 미국으로 건너갔던 금이 다시 집으로 향하는 것이다. 100조원대 금괴의 대이동에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독일, 100조원대 금괴 美서 환수
세계금위원회(WGC)에 따르면 세계 각국이 공식적으로 보유한 금은 총 3만2139t이다. 그 가운데 전 세계 금의 3분의 1 이상이 뉴욕 연방은행과 런던 영국은행 금고에 보관돼 있다. 한국은행 소유의 금(104.4t)도 영국은행에 위탁 보관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뉴욕과 런던에 금을 보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 등 각종 실물자산이 거래되는 상품시장이 활발한 뉴욕과 런던에 금을 두는 것이 거래와 자산 운용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비상시에는 스와프(교환)도 용이하고 안전 측면에서도 믿을만 하다. 특히 1944년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영국이 브레턴우즈체제를 출범시켜 달러 중심의 금본위제를 채택하면서부터 뉴욕에 금이 쌓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독일은 그동안 미국에 위탁보관하던 금괴를 회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뉴욕 연방은행 금고에 보관하던 금괴 1500t 가운데 300t을 2020년까지 프랑크프루트에 있는 독일 연방은행 금고로 이동시킨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역시 2013년 11월 미국에 보관해 온 금을 본국으로 이송시켜 미국에 보관하는 금괴 비율을 51%에서 31%로 낮췄다. 네덜란드 금 보유량은 총 613t으로 122t을 뉴욕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이동시켰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 세계 많은 금이 미국·영국에 보관돼 있지만 위탁보관해도 문제가 없는지, 실질적으로 금고에 각국 소유의 금이 존재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 등이 형성되면서 독일·네덜란드 중앙은행이 금괴 환수를 결정하게 됐다.
“금의 유혹에는 이길 수 없다”
전 세계 금의 20%는 미 뉴욕에 위치한 연방준비은행의 지하 금고에 보관돼 있다. 이 지하 금고에는 골드바 53만개 약 6700만t의 황금이 보관돼 있다. 견고한 화강암에 둘러싸인 이 금고는 해수면보다 15m 낮은 맨해튼섬 지하 25m에 있다. 무게 90t에 달하는 금고의 철강문이 닫히면 철저하게 밀폐돼 물이나 공기조차 스며들지 못한다. 병을 코르크 마개로 막는 것과 같이 철제 원기둥으로 만들어진 출입문이 140t의 금고 철근 구조물에 압력을 가하게 된다. 출입구와 밀실 등에 설치된 카메라와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가 24시간 작동해 금고를 철저히 감시한다.
금고 입구에는 독일의 문호 괴테가 한 말인 “금의 유혹에는 이길 수 없다(gold is irresistible)”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금고 안에는 총 122개의 밀실이 있다. 각 방에는 높이 3m, 너비 3m, 길이 5m로 금괴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 미국을 비롯해 60여개국 정부와 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제기구가 맡긴 금괴들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대한 선의를 보여준다는 의미로 금을 무료로 보관해주고 있다.
인류가 캐낸 모든 금 17만t 불과
인류의 영원한 보물인 금은 전통적인 투자의 ‘도피처’로 꼽힌다. 글로벌 금융 불안과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이 약화되었을 때 사람들은 안전자산인 금부터 찾는다. 또 금은 물가상승의 불안을 치유하는 ‘약’에 비유되기도 한다.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이 발생하면 화폐 가치는 떨어진다. 하지만 금은 실물자산이기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 만큼 가격이 오른다. 특히 전 세계 어디서나 화폐 대접을 받으며 통용될 수 있어 인플레이션에 따른 실문자산 가치 하락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인류가 지금까지 캔 금을 모두 합쳐도 17만t에 불과하다. 금의 희소성은 금의 가치를 지탱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또 금이 보석과 금화, 골드바 등 시장에서 거래하기 편리한 형태로 존재하는 점도 금의 가치를 높인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모든 국가의 상품은 시장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요량에 따라 조절된다. 하지만 황금보다 ‘더 쉽게 혹은 더 정확하게’ 조절되는 상품은 없다”고 말했다. 황금은 장신구, 부속품, 개인 사치품 이외에 상품 교환의 보조 도구이자 화폐 유통의 매개체로서 경제 발전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고 국력과 부의 상징으로 자리잡아 왔다.
손정희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jhs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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