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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p>
<p style='text-align: justify'>소설 '삼국지'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동양 최고의 스테디셀러 중 하나다. 삼국지가 흥미를 끄는 이유는 위, 촉, 오의 첨예한 각축과 군웅들의 지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 있을 듯하다. 세 나라 간의 치열한 전략과 리더십에 따라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것이 최근 한·중·일 제조업 상황과 오버랩(overlap)되는 듯 하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침체기를 겪던 강한 일본 기업들이 엔저를 발판 삼아 다시 살아나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1000만 대 판매 돌파를 기록했고, 일본 조선업체들의 작년 수주 실적도 4월, 6월, 9월 기준으로 조선업 세계 1위인 우리를 앞선 바 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한동안 우리가 '한 수 아래'로 평가절하 하던 중국업체들도 기술경쟁력을 갖춰 우리를 무섭게 따라잡고 있다. 특히 중국과 한국의 제조업경쟁력지수를 살펴보면, 2000년에 중국 제조업 경쟁력 순위는 우리보다 11계단 아래였지만 10년 만에 불과 3계단 차이로 좁혀진 상황이다. 주력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8대 수출업종 가운데 스마트폰, 자동차, 조선해양, 석유화학, 정유, 철강 등 6개 업종의 경우 우리나라가 이 중국에 뒤처졌다는 전경련 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이처럼 빠르게 변하는 경영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무엇보다 방향성을 잡고 마스터 플랜(master plan)을 세우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지금부터 10년, 20년 뒤 우리 제조업의 운명을 결정할 새로운 한국 제조업의 책략(策略)을 세워야 한다. 오늘날 상황에 맞게 삼국지를 다시 곱씹어 봤다. 한, 중, 일 세 나라의 제조업은, 또 그 환경은 각각 삼국지의 어떤 나라와 같을까.</p>
<p style='text-align: justify'>중국, 조조의 위나라</p>
<p style='text-align: justify'>위(魏)나라는 군사력의 바탕이 되는 인구와 자원이 세 나라 가운데 가장 풍부한 나라다. 위나라의 인구규모는 약 54만호, 440만 명이었고 군사규모는 최대 5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군사규모로 따지면 오나라의 약 두 배, 촉나라의 네다섯 배에 해당한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지금의 중국이 그렇다. 풍부한 내수시장과 투자 규모가 엄청나다. 특히 2000년대 후반기에 국제제조업경쟁력 순위에서 빠르게 올라가는 이유가 중국 내 투자확대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중국은 당분간 풍부한 인적, 물적자원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서 입지를 굳혀나갈 전망이다. 여기에 각종 육성산업에 대한 정부의 통 큰 지원도 손을 거들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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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손권의 오나라</p>
<p style='text-align: justify'>오(吳)는 양쯔강 이남에 위치해 있어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해 위나라의 압력에 잘 맞서온 나라다. 이런 지리적 이점 때문에 세 나라 가운데 크고 작은 전쟁의 빈도가 상대적으로 적었고, 내실을 다질 수 있었던 것 같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에는 도요타나 미츠비시, 소니 같은 거대기업만 강한 게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진정한 일본 제조업의 위협요소는 디테일한 원천기술 확보와 탄탄한 부품, 소재산업에 있다. 일본기업과 경제가 살아나는 게 단순히 '아베노믹스'와 엔화가치 약세 때문만이 아니라 탄탄한 기초체력이 있기 때문에 부침이 있어도 언제든 뛰어오를 수 있다는 방증이라고 본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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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비의 촉나라</p>
<p style='text-align: justify'>촉(蜀)은 빈손으로 시작한 유비가 여러 군웅과 함께 일군 나라다.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 등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이라 불린 무장과 제갈량이라는 난세의 지략가를 잘 활용하면서 위나라와 오나라에 맞서는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유비의 리더십도 한 몫 했다. '삼국지' 소설에서는 유비를 이들을 잘 다스린 덕장(德將)으로 묘사한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소득 3만 달러의 문턱까지 빠르게 성장한 나라다. 전세계에서 유례가 없다는 찬사를 받아도 과언이 아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여기엔 우리 기업들의 활약이 있었다. 유비에게 오호대장군이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삼성, 현대차, 엘지 등 글로벌 기업이 세계시장을 개척해 왔다. 하지만 이들만 가지고 과연 천하를 재패할 수 있을까. 또 시간이 좀더 흘러 이들을 잇는 다른 기업은 나타날까. 일부 기업들이 소위 '통큰 투자'를 하고 있고, 많은 기업이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나가고 있지만 전장에 나가는 장수만 노력한다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여기서 필자는 자신 있는 답을 내놓을 수가 없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우리경제를 보면 위나라처럼 풍부한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초체력이 오나라처럼 탄탄한 것도 아니다. 이 만큼 우리가 올라온 데는 이들 주력 선수들의 공(功)이 크다. 그런데 때로 '대기업은 나쁜 집단이고, 중소기업은 착하다'라거나 '회사는 나쁜데 노동자는 착하다'라는 무리한 이분법이 등장하곤 한다. 기업들의 의욕을 꺾는 반기업정서는 문제다. 제도적인 환경도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 발표 결과, 노동시장의 경직성에서 우리나라가 144개국 중 86위였다. 일본이 22위, 중국이 28위인 점을 볼 때 현저히 떨어진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이런 국제기구의 분석 결과를 빌리지 않아도 노동규제나 대기업규제는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발목 잡는 주된 원인이다. 정부가 그간의 규제개혁보다 강한 어감의 '규제혁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당을 중심으로 국회도 경제활성화를 조속히 처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곤 있다. 우리 주력산업을 둘러싼 한・중・일 삼국지, 우리 기업을 통일의 패자(霸者)로 만들 책략을 서둘러야 한다. 그 고민은 기업과 사회, 정부와 정치권 모두의 몫이다.</p>
한경닷컴 정책뉴스팀 한국정책신문 | webmaster@kp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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