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자본시장 중소업체 울린 국토부의 무(無)원칙

입력 2015-01-09 09:38
원칙없는 국민주택기금 운용 입찰에 중소 펀드평가·사무관리 회사 ‘부글부글’
국토부가 기존 고용하조달청에 맡기는 정부 입찰 원칙 깨
기재부,국토부,고용노동부 등 정부기금 운용 외부 위탁 증가…자본시장 경쟁 치열


이 기사는 01월06일(04:47)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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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마무리된 국민주택기금(20조원) 신탁·사무·평가회사 입찰과 관련, 불공정 시비가 일고 있다. 입찰을 주관한 국토해양부가 평가 일정을 수차례 연기하는 등 스스로 원칙을 깬 탓이다. 정부기금 운용 시장이 5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커지면서 업체간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뒷말 무성한 국민주택기금
국토부는 지난달 11일 국민주택기금 운용과 관련한 부수 업무인 펀드평가·사무관리·신탁 등 3개 분야에 각각 한국펀드평가, 외환펀드서 비스, 우리은행을 선정했다. 새로 도전장을 낸 ‘신예’들은 모두 탈락하고 기존 업체들이 모두 재계약을 달성했다.

각 분야별 참여 업체는 미래에셋펀드서비스, 신한아이타스, 외환펀드서비스(이상 일반사무관리), 외환은행, 우리은행, 한국증권금융(이상 신탁회사), 에프앤가이드, 한국펀드평가, KG제로인(이상 펀드평가) 등이었다.

이번에 입찰한 업무들은 주관 운용사를 선정하는 작업에 비하면 '잔챙이' 업무로 불릴 만큼 수수료 규모도 작다. 하지만 신탁업무를 제외하고 일반 사무관리와 펀드평가는 자본시장 업계의 중소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분야다. 3년 단위 계약으로 연 수수료는 5억원 안팎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기금 시장에서 계약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 중소업체들은 회사 생존이 좌우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경쟁이 치열했던 만큼 입찰이 끝난 후에도 업계의 불만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기존 업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됐다”는 게 탈락자들이제기 하는 의혹이다. A사 관계자는 “심사위원 선정 방식이 기존 정부 입찰과 달랐다”고 말했다. 조달청을 통하지 않고 국토부 자체적으로 심사위원 10명을 정했다는 지적이다.

연기금투자풀(38개 정부기금의 공동펀드, 14조원 규모)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는 2013년부터 주간운용사 및 펀드평가회사 선정 입찰과 관련해 공고에서부터 심사위원 선정 및 심사까지 조달청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사무관리와 신탁사 선정은 아예 주간사에 일임했다.

조달청의 ‘나라장터’는 정부가 발주하는 입찰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다. 국토부도 올해 국민주택기 금의 첫 주간운용사(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자산운용)를 선정할 때 심사 과정 일체를 조달청에 맡겼다. 하지만 3개 ‘잔챙이’ 업무 에 대해선 국토부 주택기금과장이 위원장으로 있는 자산운용위원회에서 심사위원들을 뽑았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심사위원들도 놀랄 정도로 공정성을 기했다”고 항변했다.

◆경쟁 치열해지는 50조 정부기금 시장
입찰 일정이 수차례 변경된 점도 탈락업체들이 의혹을 제기하는 배경이다. 국토부는 공고가 나가고 며칠 뒤인 작년 11월18일 제안서 접수 마감일을 11월19일에서 11월21일로 변경한다. ‘제안서 작성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 부여’라는 게 변경 사유였다. 이때만해도 나머지 일정은 그대로 진행되는 듯 했다.

하지만 국토부는정량평가 결과 발표를 하기로 한 11월26일 당일에 발표일을 12월1일로 변경한다고 공문을 보냈다. ‘정확한 자료 평가를 위해서‘라는 것이 이유였다. 이에 따라 정성평가 일정도 12월3~4일에서 1주일 늦춰졌다.

업계에선 입찰 일정 변경이 “매우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연기금투자풀위원회 관계자도 “서류 제출 시간이 촉박해 설사 유효 경쟁이 안되면 재공고를 내거나 들어온 곳들을 중심으로 심사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자료 작성에 관해 문의하는 곳들이 많아 아예 시간을 더 준 것”이라고 반박했다.

선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선정 사유를 밝히지 않는 것 도 ‘공정했다’는 국토부의 설명을 탈락업체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조달청을 통하면 선정 업체의 부문 별 점수가 공개돼 후발 업체들 입장에선 다음번 입찰에 참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완선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연기금투자풀을 비롯해 국민주택기금, 고용보험기금 등 각각의 정부기금을 관리하는 부처가 다르긴 하지만 특정 목적을 위해 조성한 정 부 기금이고, 조달 금리 및 목표 수익률도 거의 차이가 없는 만큼 입찰 과정이 서로 다를 이유가 없다”며 “조달청에 일임하 는 등 선정 기준을 통일하는 것이 의혹을 받지 않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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