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低유가 축복' 제대로 누리려면…"구매력 증대 → 투자·소비 살리는 것이 관건"

입력 2015-01-07 21:51
기업 비용절감 효과 커
유가 10% 하락시 생산비 日·中보다 2배 이상 혜택

최경환 부총리
"30조 실질소득 증대 효과…디플레 가능성 거의 없어"

수출 시장은 명암 엇갈려
석유화학·조선·해외건설 직격탄…신흥국 위기 확산 땐 수출 타격


[ 조진형/심성미/마지혜 기자 ]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선이 무너지면서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한국 경제에 훈풍이 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기업의 생산비용 절감과 가계의 실질구매력 증가 효과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투자와 소비심리가 워낙 얼어붙어 있어 저유가 혜택이 기대한 만큼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조선·플랜트 석유화학 등 유가 급락에 부정적 영향을 받는 업종이 전체 수출의 25%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적지 않은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성장률에 얼마나 도움되나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산업연구원, 금융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5개 국책연구기관은 7일 ‘유가 하락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를 통해 “유가 하락은 한국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해 올해 성장률을 0.1%포인트 끌어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 값싸게 원유를 들여올 수 있어 기업의 비용 절감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유가 10% 하락 시 한국 기업의 생산비는 0.76% 감소해 일본(0.34%) 중국(0.36%)보다 두 배 이상 혜택이 기대된다는 분석이다. 제조업의 경우 생산비 감소 효과는 1.03%에 달한다. 이들 연구기관은 올해 배럴당 평균 유가(두바이유 기준)를 지난해 평균(97달러)보다 35% 떨어진 63달러로 예상했다. 제조업의 생산비 절감 효과가 3%대에 이른다는 얘기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연구기관들 전망이 현실화될 경우 올해 약 30조원의 실질소득 증대효과가 발생하고 원유 수입비용도 300억달러 정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일각에선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투자·소비심리 살아날까

하지만 최근 국내외 경제 상황을 보면 유가와 수입물가 하락이 실제 소비와 생산을 늘리는 수순으로 이어질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진단도 나온다. 우선 늘어나는 가계부채, 노후 불안, 고용 여력 감소 등 구조적 요인으로 소비가 크게 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과 두 차례에 걸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SI)는 15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국내 수요가 부진하다면 기업도 생산이나 투자를 늘리는 결정을 쉽사리 내릴 수 없다. 민간소비와 관련성이 높은 도소매업(지난해 11월 기준 -2.1%) 숙박·음식점업(-0.7%) 부문은 여전히 기지개를 켜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기업투자심리지수도 전월에 비해 1포인트 하락한 93으로 내림세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소비가 늘어야 기업들이 생산비용 절감분을 생산 확대로 연결시킬 수 있는데 최근 경기상황을 보면 이 연결고리가 상당히 약화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KDI 등도 이 같은 점을 의식해 물가 구조개혁을 제안하고 나섰다. 기업의 생산비 절감이 가계의 구매력 증대로 이어지게 하려면 제품 가격 인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유가 하락에 따른 혜택이 기업 부문에 쏠려 가계의 소비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최 부총리는 “최근 국제유가가 많이 떨어져 원가에서 유가 비중이 높은 석유·화학제품 원가가 인하됐다”며 “인하분이 가격에 적절히 반영돼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수출 전선도 불안

수출에도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자동차 등은 혜택을 받지만 석유화학 조선·플랜트 해외건설 등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 중 △원유를 정제해 만든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석유화학 △선박 등 3개 품목이 한국 상품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2%(지난해 기준)에 달한다. 특히 지난해 석유제품은 한국의 전체 상품 수출 품목 중 수출실적 2위(8.9%·512억200만달러)에 올랐다. 석유화학과 선박도 각각 8.4%, 6.9%로 5위와 6위를 기록했다.

당장 정유업계는 유가 폭락으로 지난해 1조원에 이르는 영업 손실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원유 가격이 급락해 비싸게 산 원유를 정제해 싸게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수익성이 악화되고 투자 여력도 현저하게 약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유가는 상품 수출뿐 아니라 서비스 수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 분야가 해외건설이다. 중동 등 산유국들이 유가 하락에 따른 재정수지 악화 가능성을 우려해 플랜트 등의 발주를 미루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건설 부문은 지난해 1~11월 누계 기준 15.5%(150억360만달러)를 차지해 전체 서비스 산업 수출 부문에서 4위를 차지했다.

여기에 원유판매 수입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의 경제 위기가 신흥국이나 유럽연합(EU)으로 확산될 경우 한국 수출 전체가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러시아와 유럽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충격을 받을 경우 한국 수출은 2.9% 감소하고 성장률은 0.6%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세종=조진형/심성미/마지혜 기자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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