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무소불위 입법부의 '합법적 약탈'

입력 2015-01-01 20:43
수정 2015-01-02 05:35
정치과잉이 빚은 저성장 구조화
차별적 입법 설계주의 걷어내고
근로동기·유인 살려야 경제복원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2015년 을미년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전망은 밝지 않다. 재정을 풀고 금융을 완화한다고 경제가 개선될 것 같지 않다. 희망을 얘기하자고 설득해서 될 일도 아니다. 경제의 틀과 운영을 다시 짜는 ‘사고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복기(復棋)해보자. 한국은 2010년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이 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극복했기 때문이다. 그 여세를 몰아 2010년에는 6.2%의 성장률을 실현했다. 위기상황에서 경제논리에 충실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후 이어진 총선과 대선 정국에서 ‘경제민주화’가 대세를 이루면서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정치 과잉’의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정치가 경제를 압살하면서 저성장은 구조화됐다.

19대 국회 2년 반 만의 입법 발의 건수는 1만1935건으로 18대 국회 발의 건수 1만2220건에 육박하고 있다. 의사봉을 두드리면 그것이 ‘법’인 줄 안다. 입법홍수 속에 입법독재는 이렇게 고착됐다. 지난해에만 신규 순환 출자를 금지한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등 10개가 발효됐고 올해에는 이른바 환경3법이 시행될 예정이다.

사회, 인격, 재산은 법 이전에 존재했다. 인격이 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듯 재산도 법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재산권은 인간이 노동을 더해 창조한 가치에 대한 권리로서 자연권이다. 따라서 재산과 노동의 자연적 질서에 인위적 수정을 가해 이를 균등하게 조직하는 것을 입법자의 책임으로 여기게 되면 ‘설계주의’가 횡행하게 된다. 공공선과 형평 제고라는 명분은 입법자에게 무한대의 활동 공간을 제공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대형마트 영업제한 등 경제민주화법이 그런 사례다.

인간은 가능하면 고통스러운 노동을 피하고 타인의 노동의 결과를 차지함으로써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고자 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 약탈이 노동보다 쉬우면 누구나 약탈을 택할 것이다. 법이 규제, 보호, 장려 등의 명분으로 ‘누군가의 것을 덜어내 다른 누군가에게 준다면’ 입법을 요구하지 않을 집단은 없을 것이다. 19세기 자유주의자 클로드 프레데릭 바스티아는 일찍이 법이나 정치의 도움으로 타인의 재산을 강탈하는 것을 ‘합법적 약탈’로 명명했다. 합법적 약탈은 다양한 형태로 자행된다. 산업보호, 장려금, 보조금, 누진소득세, 무상복지, 이윤에 대한 권리, 임금권, 노동권, 생존권, 무이자 대출 등이 그 수단이다. 시장경제는 질식할 수밖에 없다.

국가를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무제한의 국고(國庫)와 무오류의 조언을 나눠줄 수 있다면 그런 국가를 원하지 않을 리 없다. 민간 부문이 아닌 국가가 박애주의의 실천자가 된다면 모두들 입법을 통해 특혜를 받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국가로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추가하지 않고서 그런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한 손으로 무엇인가를 빼앗아 다른 손으로 나눠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고는 약탈의 대상이 되고 국가는 ‘만인이 만인을 착취하는 거대한 허구’로 전락한다. 바스티아의 경고지만 무상복지로 내홍을 겪는 한국적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면 법은 무엇인가. 법은 인격과 자유, 재산권을 보장하고 모든 것이 정의의 지배하에 놓이도록 개인적 완력을 집단적 완력으로 대체한 것이다. 법이 살아있는 곳에서 시장경제는 작동한다.

최근 미국의 경제회복을 이끈 근저요인으로 ‘셰일혁명’이 거론된다. 하지만 셰일오일은 유럽과 중국에서도 채취가 가능하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미국의 힘이다. 유럽은 개발이익의 공유화 논란으로 개발이 실패한 반면 미국은 민간업체의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셰일붐이 일어났다. 재산권 보장이 민간의 창의적 혁신을 가능케 한 것이다.

한국 경제가 활력을 잃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서법, 떼법, 특수계층의 이익을 보호하는 각종 처분법 등이 횡행하면서 근로 동기와 유인이 상실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무소불위의 합법적 약탈을 제어하지 않고서는 추락하는 경제를 반전시킬 수 없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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