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연 정치부 기자) 문재인 의원이 새정치연합 전당대회에 출마하면서 ’총선 불출마'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빗발치는 ‘빅3’후보 불출마 요구에다 친노(친노무현계)패권주의를 경계하는 당내외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인데요.
문 의원은 지난 29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대표가 되면 저는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선당후사의 자세로 변화와 혁신에만 전념하고, 기필코 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우리 당을 살리는 데 제 정치인생을 걸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이 카드는 역공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문 의원의 지역구는 부산 사상구입니다. 전통적 지지기반을 호남에 두고 있는 새정치연합이 영남지역에 가진 의석수는 단 2석입니다. 그만큼 영남 지역구가 가지는 상징성이 남다르고, 다른 지역구 불출마 선언과는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산 사하구을 3선 의원이자 당 대표에 출마한 조경태 의원은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부산에서 4번이나 출마해 떨어졌던 ‘바보 노무현’의 정신을 저버렸다”며 “어려운 지역을 미리 포기해 버리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습니다.
조 의원의 말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별명은 ‘바보 노무현’이었습니다. ‘지역주의의 벽을 넘겠다’며 부산 지역 선거에 4번이나 출마했지만, 첫 선거를 빼고는 모두 낙선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와의 인연으로 부산 동구 의원으로 당선됐습니다.
1992년 민주당 후보로 부산 동구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1995년에는 부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해 36.7%의 득표율을 얻었으나 결국 낙선했습니다. 1998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노 전 대통령은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서울 종로구에 출마해 당선됐고, 6년 만에 국회에 복귀하게 됩니다.
하지만 2000년 16대 총선 당시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종로를 포기하고 “지역주의의 벽을 넘겠다”며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습니다. 그 때부터 노 전 대통령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는 광주 경선에서 영남 출신인 그가 1위를 기록하게 되고, ‘노풍(盧風, 노무현 바람)’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런 노 전 대통령의 뒤를 잇겠다고 나선 이가 바로 새정치연합의 김부겸 전 의원입니다. 지역구도 타파에 정치적 명운을 건 김 전 의원은 당내 대표 출마 요구에도 불구하고 “대구에서 먼저 꿈을 이루고 싶다”며 당 대표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새누리당에는 자신을 ‘호박국 대변인’(호남·박근혜·국민의 대변인)이라 부르며 19년동안 4번이나 호남 선거에 도전한 끝에 전남 순천·곡성 보궐선거에 당선된 이정현 의원이 있습니다. 당을 향해 “새누리당은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해오던 이 의원은 29일 “새누리당이 내년 4월 보궐선거에서 광주 서을 선거를 포기하는 것을 포기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영·호남간 지역 구도를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 양당구도 하에서 ‘지역구도’를 깨기 위한 노력은 이렇게 끈질겼습니다. 문 의원은 ‘영남지역 총선 불출마’는 보통의 불출마와는 성격이 다르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당 대표가 될 경우) 제가 출마하지 않고, 전체 선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우리 당의 총선 승리에 도움 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것이 영남지역 의석 확대에도 도움 될 것이라 믿는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문 후보처럼 대선 후보급의 정치인이 아닌 새정치연합이 영남의 벽을 쉽게 허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지역구 관리 소홀 등으로 패배가 예견된 총선을 회피했다는 비난까지 쏟아내고 있습니다.
한 의원은 “당 대표가 되건 말건 적지에서 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는게 진짜 ‘노무현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진의와 상관없이 문 의원이 ‘노무현 정신'을 회피했다는 공격을 받는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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