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용주 기자 ]
독일 베를린의 주요 관광명소 중 한 곳인 찰리 체크 포인트에 가면 낯선 자동차가 한 대 전시돼 있다. 과거 동독의 대표 자동차였던 트라반트(trabant)다.
일명 트레비(trabi)로도 불리는 트라반트는 원래 세 바퀴 모터사이클에서 네 바퀴 자동차로 진화했다. 동독(독일민주공화국)이 1957년 츠비카우공장에서 생산한 2기통 네 바퀴 승용차다. 3360㎜의 길이에 휠베이스(앞뒤 바퀴축 간 거리)는 2020㎜, 너비는 1500㎜였다.
초기 엔진은 2기통 500㏄였다. 따라서 차명도 ‘트라반트 P50’으로 불렀다. 최대 출력은 18마력과 20마력 두 가지였지만 1962년 배기량이 600㏄로 커지며 출력도 23마력으로 상승했고 차명도 P60으로 바뀌었다.
P60을 잇는 P601은 1964년 등장했다. P60의 부분 변경이지만 앞과 보닛, 지붕, 뒷모습까지 P50과 닮았다. P601은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트라반트의 전형으로 판매됐다. 당시 트라반트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끊임없이 새로운 후속 차종 개발을 시도했지만 동독 정부는 물자 부족을 빌미로 이들의 요구를 모두 거절했다. 수십년 동안 트라반트 모습이 변하지 않았던 이유다.
트라반트가 서방 세계에 크게 알려진 것은 1989년이다. 동독을 벗어나려는 수많은 주민이 트라반트를 몰고 헝가리와 체코를 경유해 서독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배출가스가 워낙 심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그러자 그 해 폭스바겐이 폴로에 탑재되는 1.1L 2기통 엔진을 동독에 제공했고, 차명은 ‘트라반트 1.1’로 정해졌다. 이외에 브레이크와 방향지시등, 그릴은 물론 서스펜션도 스프링 방식에서 맥퍼슨 타입으로 바뀌었다.
이 같은 개선에도 불구하고 이 차는 1990년 5월 생산 중단됐다. 과도한 배출가스 때문이었다. 그러자 트라반트는 독일 통일의 상징물로 여겨지며 단숨에 인기 수집품으로 바뀌었다. 트라반트가 생산되던 공장은 폭스바겐이 인수해 부품 공장으로 전환시켜 운영 중이다.
북한의 자동차도 경쟁력 없기는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차가 국내외에서 연간 판매량이 800만대를 돌파했다. 북한은 고작 1000대가량 생산한다. 2000년 북한과 자동차를 합작 생산하겠다며 뛰어든 남한의 평화자동차도 철수한 지 오래다. 남북한의 기술력 차이는 통일 전 동독과 서독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선 통일에 대비해 북한 승용차에 한국산 엔진을 얹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북한의 ‘휘파람’ ‘승리호’ 등에 남한의 친환경 엔진을 탑재하는 식이다. 생산 범위를 완성차로 확대하면 통일된 후 곧바로 완성차 수출에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폭스바겐이 트라반트에 엔진을 제공했던 게 부럽기만 한 이유다.
권용주 오토타임즈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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