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카메라
국내 진출 본격화
대만·싱가포르업체도 상륙
토종 핀테크 벤처들
싹 틔우기전에 고사위기
규제에 갇힌 한국
금융식민지 전락 우려
[ 안정락 기자 ]
국내 전자결제 시장에 정보기술(IT)로 무장한 글로벌 ‘핀테크(fintech)’ 업체들이 빠른 속도로 침투하고 있다. 핀테크란 금융(financi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스마트폰을 활용한 결제·송금 등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말한다.
대표적인 글로벌 핀테크 기업은 미국의 페이팔, 중국의 알리페이 등이 있다. 이들 업체는 최근 한국 시장에서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제휴를 강화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중국 최대 게임회사인 텐센트의 전자결제 자회사인 텐페이도 국내 업체와 협력을 통해 한국에 진출했다.
핀테크 전문가들은 이들 글로벌 회사가 국내 ‘스마트 금융’ 시장을 파고들기 시작하면 이제 싹을 틔우기 시작한 한국의 핀테크 벤처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은 “우리보다 후진국으로 여겨지는 중국도 핀테크 분야에서는 훨씬 앞서가고 있다”며 “해외 금융 서비스의 공략이 거세지면 우리는 ‘금융 식민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페이팔·알리페이 등 한국 사업 강화
미국 최대 전자결제 회사인 페이팔은 최근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한 채비를 갖추고 있다. 에뉴 나야 페이팔 시니어디렉터(상무)는 지난달 기자들과 만나 “현재 한국 금융당국과 인허가 여부를 협의하고 있는 중”이라며 “페이팔은 한국을 중요한 시장으로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페이팔은 국내에서 전자결제대행(PG) 업체인 KG이니시스 등과 제휴해 인터파크 글로벌 쇼핑몰에서 간편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전자결제 자회사인 알리페이도 국내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티머니(Tmoney)를 발행하는 한국스마트카드와 손잡고 선불형 직불카드 형태의 ‘엠패스(M-pass)’를 중국인 대상으로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관광객들이 한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편의점 대형마트 영화관 카페 등 전국 10만여곳의 티머니 가맹점에서 터치 한 번으로 결제할 수 있는 카드다. 연간 800만명이 넘는 중국 관광객을 겨냥한 서비스다.
중국 텐센트의 전자결제 자회사인 텐페이도 국내에서 효성 관계사인 PG사 갤럭시아커뮤니케이션즈 등과 제휴해 결제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 텐센트는 최근 전자결제 담당 부사장 등 5명이 방한해 제주도 관계자들과 간편결제 사업 협력을 논의하기도 했다.
대만·싱가포르 업체도 몰려와
최근엔 대만 싱가포르 등 동남아 지역 핀테크 업체들도 한국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대만의 최대 온·오프라인 전자결제 업체인 개시플러스(Gash+)와 싱가포르 전자결제 회사인 유페이 등이 그 주인공이다.
개시플러스는 갤럭시아커뮤니케이션즈와 제휴를 맺고 대만 홍콩 등지의 소비자들이 국내 쇼핑몰에서 편리하게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년 초께 내놓기로 했다.
유페이는 글로벌 전자상거래 업체인 유주그룹의 계열사다. 유주그룹은 한국에서 쇼핑몰 사이트를 열고 유페이 결제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유주코리아 관계자는 “처음에는 뷰티 패션 등 한류 상품 위주로 중국 일본 등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한 뒤 점점 품목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핀테크 산업의 문제점은
이들 글로벌 핀테크 업체는 현재까지는 국내에서 외국인 대상 서비스만 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국내법인 설립 등을 통해 정식으로 등록, 인허가 절차를 거쳐 한국인을 상대로 결제 서비스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핀테크 업계는 페이팔 등 해외 업체들의 진출이 가시화하면 연 15조원 규모로 성장한 국내 모바일 결제 시장을 잠식해 나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핀테크 업계에선 보이지 않는 ‘규제’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10월 초 신용카드사의 모임인 여신금융협회는 앞으로 PG사들이 카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PG사가 카드 정보를 저장해 두면 카드번호 입력 등 번거로운 절차 없이 미국 아마존 결제처럼 클릭 한 번에 물건을 사는 간편결제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여신금융협회는 신용카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PG사 기준을 자기자본 400억원 이상, 순부채 비율 200% 이하로 내걸었다. KG이니시스 등 전문 PG업체 33개사 중에서 불과 5~6개사만 이 기준을 통과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핀테크 산업 발전이 더딘 이유로 ‘신용카드의 역설’도 꼽고 있다. 한국의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신용카드만큼 편리한 결제 시스템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 비밀번호 입력, 신분증 확인 등 절차가 까다롭지만 국내에선 그냥 카드만 건네면 끝이다. 한국은 카드사를 중심으로 이런 ‘신용카드 천국’에 안주하며 핀테크 산업을 키우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민화 KAIST 교수는 “소비자와 공급자가 즉시 연결되는 ‘초연결 사회’에서는 기득권이 갖고 있는 완강한 규제의 벽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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