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油價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입력 2014-12-16 20:59
수정 2014-12-17 05:42
오춘호 논설위원·공학博 ohchoon@hankyung.com


미국산 초경질유 40만배럴이 지난달 여수항을 통해 39년 만에 들어왔다. 알래스카산 원유도 같이 수입됐다. 미국산 석유가 한국에 빗장을 푼 것이다. 물론 한국만이 아니다. 일본서도 미국산이 수입됐다.

미국은 이미 셰일 유전과 가까운 동부 캐나다에 하루 50만배럴을 수출한다. 멕시코 수출도 하루 20만배럴이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칠레나 싱가포르에서도 마찬가지다. 내년 들어선 하루 100만배럴 이상 해외에 판매하는 수출국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미국의 시사저널 포린폴리시는 전한다. 이미 하루 생산량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맞먹는 산유국이다. 내후년쯤이면 최대 생산국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최대 생산국이며 소비국이요, 주요 수출국으로의 등극이다.

카르텔 벗어나 시장서 가격 결정

미국의 원유 수출을 우려하는 국가는 뭐니 뭐니 해도 사우디다. 사우디는 이미 수년 전부터 미국산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의 대(對)아시아 수출을 걱정했다. 사우디의 최대 고객은 미국이고 그다음이 일본 중국 한국이다. 대아시아 수출이 전체 70%다. 만일 이들 국가가 미국산을 쓰게 된다면 사우디로선 치명적이다. 다른 생산국에 시장 점유율을 한 번 빼앗기면 자신들의 석유를 팔 수도, 태워버릴 수도 없는 좌초 자산(stranded assets)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다.

원유는 20세기 세계 경제의 명맥을 흐르게 한 최대 히트상품이다. 단순한 원자재나 상품이기보다 오히려 투자상품이었고 금융자산이었다. 원유와 달러 거래는 직접적인 상관성을 가졌다. 유가가 오르면 달러 가치는 내려가고 유가가 하락하면 달러 가치가 상승했다. 물론 거기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란 카르텔이 존재했다. OPEC은 새로운 산유국이라하더라도 이 체제에 편입했다. 초기 OPEC 회의에서 그렇게 반기를 많이 들었던 베네수엘라마저 지금은 OPEC 뜻에 따른다. 이 체제에선 시장 원리를 찾고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운운할 수 없었다. 국제 정치 경제 질서 확립의 주요 변수였다.

원가 경쟁 더욱 치열해질 듯

미국은 이런 OPEC 전략을 경계하며 살았다. 가격이 배럴당 150달러를 뚫었던 2007년 미국 의회는 ‘NOPEC’이라는 반카르텔 입법까지 만들 정도였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역시 공정한 무역체제를 위해선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OPEC 체제를 붕괴시켜야 한다고 경고까지 했다. 셰일오일 혁명이 터졌던 것은 이즈음이다.

이제 공급량보다 수요량을 걱정한다. OPEC의 힘은 사라지고 유가는 급락한다. 사우디도 시장을 뺏기지 않으려 애쓴다. 사우디가 감산하지 않겠다는 이유다. 석유시장은 철저한 시장경제 원리가 작동한다. 이전 OPEC의 힘으로 떨어지는 유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의 셰일 혁명이 낳은 큰 패러다임 변화다. 원유는 이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일반 상품(commodity)과 차별성이 없어졌다. 이런 과정에서 자본시장의 혼돈도 확산된다.

생산혁신에 의한 처절한 원가경쟁이 석유시장에 불어닥칠 전망이다. 미국에서 오래된 유정(油井)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유정은 채굴 원가가 매우 싸다고 한다. 물론 최종 승리자는 소비자다. OPEC식 석유 장사의 종언이다. 록펠러 시대 이후 석유산업의 최대 격변이다. 한국은 과연 어떤 길을 걸을지.

오춘호 논설위원·공학博 ohchoon@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