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저유가發 신흥국 위기, 국부 재편의 서곡이다

입력 2014-12-16 20:49
수정 2014-12-17 05:44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일부 산유국들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으로 몰리는 가운데 신흥국들의 화폐가치가 연쇄적으로 폭락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베네수엘라의 충격이 크다. 러시아는 어제 기준금리를 일거에 6.5%포인트 인상, 연 17%로 올렸다. 하루 새 루블화가 10%나 폭락하면서 연초 대비 50% 가까이 추락하자 환율방어와 인플레 억제를 위해 극약처방을 내놓은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디폴트 상황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전임 차베스 정권 때부터 반미 구호를 외쳐온 베네수엘라도 디폴트 위기감이 감돈다. 1년 내 디폴트에 직면할 가능성이 97%에 달한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할 정도다. 인도네시아 루피아도 16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고, 브라질 헤알도 10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터키 리라도 급락했다. 금융구조가 취약한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세계의 주식·채권·통화 시장이 출렁거린다. 안전지대는 보이지 않는다. 1997~1998년 신흥국 외환위기의 데자뷔라는 우려가 잇따른다.

지난 6월 중순 배럴당 106달러였던 유가가 55달러대(뉴욕상업거래소 WTI 기준)로 떨어지는 추세가 심상치 않다. 반년 만에 말 그대로 반토막이 났다. 40달러까지 갈 것이란 예측도 결코 과장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연합전선 혹은 패권경쟁이라는 음모론(한경 12월16일자 A2면)까지 국제사회에 그럴듯하게 퍼지면서 한 치 앞 전망이 어렵다. 유가하락이 단순히 호재가 아니라 미래불확실 요인 혹은 또 하나의 불안요소로 계속 작용하는 국면이다.

세계 에너지 시장의 대격변 속에 슈퍼 달러가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셰일가스 혁명에다 제조업의 부활로 팍스아메리카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달러 강세가 신흥국 경제를 어렵게 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점차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국부(國富) 또한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극적인 환율전쟁은 그 과정으로 봐야 한다. 신흥국들의 위기는 경제의 펀더멘털이 약한 곳으로 집중되면서 국부 재편은 가속화할 것이다. 한국도 비상한 국면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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