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바람은 수구문(水口門)으로 들어온다’는 속담이 있다. 여기서 못된 바람은 앞바람, 뒷바람도 아닌 피죽바람을 말한다. 모내기 무렵 오래 부는 아침 샛바람(동풍)과 저녁 높하늬바람(서북풍)은 큰 흉년을 불렀다. 피죽 먹기도 힘들다는 원망의 바람이다. 다니는 길도 험악해서 주검이 오가던 시구문(屍口門)을 쏘다닌다. 수구문을 시쳇말로 시구문이라고 한다.
수구(水口)는 마을 물길의 끝자리다. 동리 안 작은 실개천과 동리 밖 큰 하천이 조우하며 유정히 떠나는 지점이다. 마을 끝자락 두 물의 만남은 격정적 에너지를 품고 파괴의 모습으로 주위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파구(破口)라는 새 이름을 얻어 나무 심고 절을 지어 지력 보호에 온 힘을 쏟았다.
마을 입장에서 물길 끝자리는 항문(肛門)이지 입(口)이 아니다. 인체의 노폐물 가득한 정맥과 같다. 더러운 것들의 집합소다. 물길은 바람을 만든다. 동리 안의 착한 바람은 물길 따라 수구를 향하고, 동리 밖 못된 바람은 물길을 거슬러 수구를 친다. 엉성하고 광활한 수구는 벌어진 항문과 같아 모든 것을 쏟아낸다. 가산은 기울고 유리걸식하는 신세로 전락한다는 것이 풍수학의 결론이다.
서울 강남구의 A건물은 새주인을 찾지 못한 지 2년째다. 유동인구가 많은데도 임차인이 6개월을 못 넘긴다. 폐업이 속출해 주위 평판도 나쁘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옆 건물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듯 한데 결과는 천양지차다.
오늘날 도시에서 물길은 도로다. 물은 자산과 연봉을 관장한다. 큰 도로 곁에 큰 부자 나고 작은 도로 곁에 작은부자 나는 것이 물의 법칙이다. 오죽하면 요즘 명당은 ‘좌(左)철도, 우(右)고속도로’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겠나. 결국 도로를 통해 사람들이 모이고 돈이 몰린다. 그런데 문제는 도로도 도로 나름이라는 점이다. 이성계가 조선의 수도를 계룡산 신도안에서 오늘의 서울로 옮긴 것은 물길 방위 하나 때문이었다.
물길 즉 도시의 도로는 내 일터, 쉼터, 놀이터로 좋은 방위로 들어와서 나쁜 방위로 빠져나가야 좋다. A건물처럼 도로의 기운이 옆으로 치고 올라오거나 일직선으로 다가오고 있다면 빠른 강구가 필요하다. 풍수학에서 산기운의 인물은 늦은 결과를 보지만 물에 의한 재물은 빠르다 했다. 정문의 위치를 바꾸거나 차폐를 통한 일시적 변통이라도 서두르는 것이 좋다.
조선시대 천문지리에 능통했던 성회재(成悔齋)는 ‘반곡식목지’에서 사람의 수구로 수염에 둘러싸인 입을 가리킨다. 수염은 지위와 권위로서 입놀림에 신중하라는 뜻이다. 분명 사람의 수구는 항문도 입도 가능한 양면적 문(門)이기 때문이다.
강해연 < KNL디자인그룹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