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세금폭탄 맞는 카드사들의 선행

입력 2014-12-14 20:38
수정 2014-12-15 04:58
이지훈 금융부 기자 lizi@hankyung.com


[ 이지훈 기자 ] “글쎄요. 집적회로(IC) 단말기 전환 사업은 아마 올해 안에 시작도 못할 겁니다.”

신용카드업계 고위 관계자가 지난 10월 저녁 자리에서 해 준 말이다. IC 단말기 전환은 위·변조에 취약한 마그네틱 카드 단말기를 보안성이 높은 IC 단말기로 교체하는 사업이다.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시는 ‘카드회사별로 사업비를 얼마씩 분담할 것인가’라는 핵심 난제가 해결된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두 달 후 그 관계자의 말은 현실이 되고 있다. 갑작스레 증여세 문제가 불거지면서 단말기 교체비는 한 푼도 걷히지 않았고, 사업 진행은 난관에 부딪쳤다.

내막은 이렇다. 카드회사들은 전환 기금을 모은 뒤, 여신금융협회로 넘겨 사업을 진행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1000억원의 출연금이 증여로 간주돼 절반인 500억원을 증여세로 물 수 있다는 점을 놓쳤다. 분담액 규모를 두고 ‘더 적게 물겠다’며 힘겨루기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증여세 이슈를 인지한 여신협회 등은 10월 말이 돼서야 부랴부랴 국세청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그러면서도 ‘별 문제 없을 것’이라며 자신했다. 영세 카드가맹점을 지원하는 공적인 성격의 선행이라는 점이 감안될 것이란 판단이었다. 금융당국도 ‘부처 간 협의로 풀 수 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기대와 달리 국세청은 조성되는 1000억원 중 500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고 최근 회신해 왔다. 당황한 카드업계는 뒤늦게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예외조항을 통해 공익단체로 인정받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생명보험회사들이 2008년 사회공헌기금을 조성할 때 활용한 방법이다. 당시 생보사들은 기획재정부와 사전 협의를 통해 세금을 피해 갔다.

대비할 수 있는 문제에 소홀한 점이 잘못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후의 태도다. 금융당국과 여신협회 등은 관련 언급 자체를 꺼리고 있다. 실수를 감추기 위해서라는 이해는 가지만 비밀주의 고수는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이라도 단말기 교체의 공익성을 부각시키고 공론화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체면 탓에 우물쭈물하다가는 전환 지연에 따른 소비자 피해만 더 키우게 된다.

이지훈 금융부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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