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내가 만난 운명의 Book (6) 김남의 '노컷 조선왕조실록'
◇편집자주: 이 책은 9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조선왕조에 대한 기본적인 오해를 풀어놨다. 김씨, 이씨 같은 성씨가 있던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도 채 안됐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2장 껍데기로만 이어간 왕조 오백년, 3장 끊임없이 이어진 역모와 반역, 4장 언제 한번 죽기 살기로 싸워본 적이 있는가, 5장 굶어 죽고 병들어 죽다 망한 나라 등이다. 우리가 보아온 조선시대 TV 드라마와 책 내용이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충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가뜩이나 호기심 많은 임금이었다. 세종은 자기 아버지 태종이 어떻게 기록돼 있는지 궁금했다. 사관을 불러 졸랐다. 나 그것 좀 보여다오. 사관은 거절했다. 전하께서 그것을 보시면 전례가 남을 뿐만 아니라 선왕(先王)의 흑역사를 고치고 싶어질 것이기에 아니 되옵니다. 어명과 사정을 반복한 끝에 세종도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실록에는 이렇게 기록이 남았다. 주상께서 실록을 보여달라 보채시다.
정말이지 멋진 에피소드다. 칼날 같은 임금의 명을 꿋꿋하게 거절한 사관의 기개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관이 끝까지 열람을 거부한 것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1893권 888책(국역본으로는 413권)으로 총 글자 수가 6400만자에 달하는 민족의 긍지이자 자랑인 조선왕조실록.
그런데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대체 이 기록은 왜 남긴 것일까. 앞에서 말한 대로 임금은 실록을 볼 수 없었다. 국정 운영에 실용적으로 쓰인 것도 아니다. 국정에는 오로지 고대 중국 왕들의 가르침과 사례만이 동원됐다. 당 고조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명나라 태조께서는 이런 지침을 내리셨습니다, 어쩌고저쩌고. 조선왕조실록은 철저하게 죽은 기록물이었다. 설마 500년 후 후손들이 사극 드라마 만들 때 보태 쓰라고 기록한 것은 아닐 테고 대체 왜 이런 무식한 짓을 했을까.
소개하려는 김남의 ‘노컷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이에 대한 답이 나온다. 아울러 조선이라는 나라의 민낯과 서류상으로만 아름다웠던 조선이라는 나라의 실상이. 일단 답부터 하자. 조선왕조실록은 오로지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한 사대부들의 견제장치였다. 허무하지만 그게 전부다. 왕은 틈만 나면 벗어나려 했고 신하들은 조선이 사대부의 나라라는 것을 잠시라도 임금이 잊을까봐 사사건건 통제하고 수시로 잽을 날렸다. 그게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까지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의 정체인 것이다.
이제 ‘노컷 조선왕조실록’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조선의 민낯을 보자. 조선은 왕의 나라였던가 사대부들의 나라였던가. 어쩌다 왕의 나라였지만 대체로 사대부들의 나라였다. 헌종은 여덟 살에, 순조는 열 살, 단종과 명종은 열한 살, 성종과 고종은 열두 살, 선조는 열다섯 살에 왕위에 올랐다. 중종, 예종, 연산군, 철종은 열여덟에 왕이 됐다. 전부 애였다(철종은 아예 까막눈이었다). 애들 머리 위에 허울 좋은 왕관을 씌워놓고 사대부들 멋대로 끌고 간 나라가 조선이었다.
그럼 사대부들이 다스린 조선은 어떤 나라였을까. 누군가는 조선이 도덕국가였다고 말한다. 세계사적으로 500년이나 존속한 왕조가 드문데 조선이 그 수명을 누린 것은 도덕적으로 탄탄한 사회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제 정신으로는 이런 소리 못한다. 도덕국가가 아니라 도적국가였다. 조선은 20%도 안 되는 양반들이 나머지 80%의 피를 쪽쪽 빠는 흡혈국가였다.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노비였으며 수도인 한성은 인구의 70% 이상이 노비나 천민이었다. 흔히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세계 최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도의 신분제도는 다른 종족 간에 벌어진 전쟁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 패배한 종족은 모조리 노예가 되었고 그래서 많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다르다. 단일종족이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땅에서 태어난 사람을 절반 이상 노비로 부린 나라는 조선이 아마 유일할 것이다. 이이는 상소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도대체 자기 나라의 같은 민족을 이렇게도 많이 노비로 부리고 사고파는 나라가 동서고금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혹시 이런 고사를 들어 반문하고 싶을지 모르겠다. 밭에서 호미질을 하던 세종이 내관을 불러 물었다. “너는 백성의 하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내관이 답했다. “그야 두말할 것도 없이 전하이옵니다.” 세종은 호미질을 멈추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임금의 하늘은 백성이니라.” 아까도 말했다. 조선은 ‘서류상으로만’ 아름다운 나라였다고. 현실은 달랐다는 이야기다.
임진왜란 때 노비들이 앞장서서 싸웠다. 왜 그랬을까. 애국심이 넘쳐서? 그럴 리가 없다. 왜군 목을 하나 자르면 상을 주고, 둘을 자르면 면천하고, 셋을 자르면 관직을 준다고 양반들이 꼬드겼기 때문이다(물론 약속은 안 지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노비들이 왜군에 붙을까봐 그랬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이렇게 물었다. “지금 왜군의 절반은 조선 백성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웬 말이냐?”
‘노컷 조선왕조실록’은 불편하다. 그런데도 권하는 이유가 있다. 조선은 망했지만 조선의 못돼 먹은 정신은 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가치관은 아직도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농공상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중세의 그림자가 몸과 머리를 가르고 몸의 노동을 얕잡아보는 풍토를 강요하는 중이다. 직업에 대한 차별이 이 우산 속에 있음은 물론이다. 조선이 왜 망했는지 그리고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얼 고쳐야 할지 궁금하다면 노컷으로 일독!
남정옥 < 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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