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적자기업 주의보④<끝>] 붙였다가 떼고, 또 붙이고…'상장퇴출 제도' 실효성 논란

입력 2014-12-12 08:30

한국거래소가 2008년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도입한 '상장퇴출 선진화 방안'을 두고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5년 연속 영업적자가 지속되면 상장 폐지하겠다는 제도지만 퇴출 기준으로 삼고 있는 '별도 재무제표'가 한계기업을 제대로 솎아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퇴출 주의보가 내려진 기업 가운데 상당 수는 정상적인 영업활동 보다는 부실 사업을 자회사에 털어내거나 우량회사를 인수하는 방법으로 상폐 위험을 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별도 재무제표 상에서는 자회사 등 연결회사의 실적이 잡히지 않아서다.

◆ 퇴출 위험 기업 생존률 1년 새 0%→70% 왜?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한 코스닥 기업은 CU전자, 엘컴텍, 유니슨, 피앤텔, 해피드림, 와이즈파워, 자연과환경 등 7개사다.

지난 5월 부도로 이미 상폐된 CU전자를 제외한 6개사는 올해까지 영업적자가 지속될 경우 증시에서 퇴출된다.

이 중 피앤텔을 뺀 5개사는 올 3분기 누적으로 영업흑자를 기록했다. 4분기 대규모 손실만 나지 않는다면 벼랑 끝에서 극적으로 회생할 가능성이 크다. 7개 회사 중 5개 회사가 위기탈출에 성공하면 생존률은 71%다.

'상장퇴출제도 선진화 방안'으로 첫 퇴출 기업이 나왔던 지난해 엠텍비젼 등 후보군에 있던 4개 회사가 모두 상폐된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하지만 기사회생한 회사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실제 영업활동을 통해 돈을 벌어들여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기 보다는 부실회사, 우량회사를 떼고 붙인 결과로 최악 상황에서 벗어난 때문이다.

자연과환경은 지난 3월 실적 발목을 잡아온 철강사업 부문을 분할해 100% 자회사인 자연과환경스틸을 신설했다. 이어 8월엔 자연과환경스틸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부실한 사업을 자회사에 털어낸 덕에 올해 3분기까지 누적으로 16억원 흑자를 기록 중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자연과환경스틸은 회계상 자회사로 돼 있어 연결 손익에는 영향이 있지만 별도에서는 영향이 없게 된다"며 "매각 이후에는 재무제표 작성 시 연결대상 종속회사에서 제외하고 철강 부문은 중단사업 손실로 회계처리했다"고 설명했다.

해피드림은 반대로 이익이 나는 자회사를 흡수 합병한 경우다. 상반기까지 적자였던 이 회사는 자회사 홍익인프라를 흡수하고 미수금 회수에 적극 나서 3분기 약 1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누적으로는 2억원 흑자 상태다.

해피드림 관계자는 "홍익인프라 흡수합병은 전략적 결정이었다"며 "미수금에서 변동사항이 있어 3분기 흑자로 돌아설수 있었다"고 말했다.

와이즈파워도 사업이 양호한 최대주주 컨벡스의 정밀제어사업부를 인수하면서 3분기까지 영업흑자를 기록했다.

◆ 상폐기준 '별도 재무제표'…금융위 "국제기준 '연결'"

이같은 방법이 가능한 건 영업적자 기업의 상폐 조건이 자회사 등의 실적을 제외한 별도 기준 재무제표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국제회계기준(IFRS) 연결 재무제표 의무적용에 따라 기업들의 실적 공시도 연결 기준으로 바뀌었지만 관리종목 지정과 5년 연속 영업적자 기업의 상폐 조건은 별도 기준으로 따진다.

거래소는 실제 영업활동을 통해 이익을 내고 상장을 유지할 수 있는 지 여부를 가려내는 것이 선진화 방안의 취지여서 별도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별도 기준이 되려 부실기업이 우량기업으로 겉모습을 바꿀 수 있는 구실이 되거나 흑자기업이 퇴출 대상에 이름을 올리는 덫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퇴출 위기에 놓인 6개사 가운데 와이즈파워 등은 연결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하게 되면 여전히 적자 상태다.

반대로 지난해 경우엔 관리종목 대상에 오른 기업들 중 일부가 연결 재무제표로 따졌을 때 흑자로 돌아섰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앞서 금융위원회는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시행령'(외감법) 개정안에서 외부감사인 지정대상이 되는 재무기준을 별도가 아닌 연결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삼도록 했다. 별도 재무제표로 판단할 경우 연결회사간 거래를 통한 규제회피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준구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 공정시장과 사무관은 "별도 재무제표로 판단하면 자회사와의 거래를 통해 부채비율 등을 낮출 우려가 있다"며 "국제회계기준 상으로도 주재무제표는 연결 기준"이라고 지적했다.

윤 사무관은 또 "연결 재무제표는 모회사와 자회사간 거래가 상계된다"며 "예컨대 모회사가 자회사에 물건을 팔아 돈을 벌었다면 별도에서는 이를 재무제표에 반영하지만 연결은 모회사와 자회사를 한 회사로 보기 때문에 반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 회계전문가 역시 "기업을 종합적으로 보려면 연결 재무제표로 봐야 한다"며 "국내 기업들도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해외 공장과 법인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해외법인 실적이 잡히지 않는 별도로 본다면 억울한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거래소 "부실사업 정리 주주들에 도움…성장성 높아져"

한국거래소 입장은 금융위원회와 엇갈린다. 정지헌 거래소 코스닥 공시팀장은 "부실 사업을 떼어버리면 결국 남아있는 회사는 더 건전해지고 주주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며 "우량한 사업부만 남기 때문에 향후 성장성도 더 유망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 팀장은 "기업 입장에서 이런 제도가 있으면 계속해서 건전화 시도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상장퇴출 선진화 방안은 사업적· 재무적으로 허점이 있는 곳들을 솎아내자는 게 취지"라고 말했다.

금융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심사를 할 때 별도 혹은 연결 중 어느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는 고민이 많은 부분"이라며 "다만 별도 기준으로 특정 회사의 상태를 판단할 때 자회사에 넘긴 부실사업이 모회사로 다시 이전되거나 외부 공시를 거치지 않은 이면 계약 등이 있는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경닷컴 기획취재팀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