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가뭄 지속 '악몽'
전세계 발주 각각 4대 뿐…저가수주 경쟁 다시 '고개'
기존 계약도 "가격 낮춰라"…부품社 경영난에 구조조정
중동국가들 재정수지 악화…내년 발주 연기·취소 우려
[ 최진석 / 이현일 기자 ] 급격한 유가 하락이 조선 및 플랜트 업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가가 계속 급락하면 수주 가뭄을 겪게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부 고객은 이미 발주한 물량에 대해 인도 시점을 늦춰줄 것을 요구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대우조선해양에서 해양플랜트 수주를 담당하는 서재관 영업 3팀장(상무)은 “최근 들어 유가가 급락하자 미국 셰브론 등 오일 메이저들이 발주하는 대규모 FPSO(부유식 원유시추저장설비)와 드릴십 등 해양플랜트 수주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고 9일 말했다. 포스코플랜텍과 같은 해양플랜트 부품업체들은 경영난을 겪고 있다. 석유화학 플랜트를 건설하는 엔지니어링업체들 역시 내년부터 더욱 심각해질 수주 가뭄 공포에 떨고 있다.
저가 수주 악몽 되살아나
조선업계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에서 나온 20억달러 이상의 대규모 FPSO 발주는 3~4개뿐이었다. 2012년 12건의 3분의 1 수준이다. 지난해와 비교해도 반 토막이 났다. 5억달러 이상 규모의 드릴십 발주는 올해 단 4척에 그쳤다. 서 상무는 “이마저도 2척은 싱가포르 조선사가 굉장히 낮은 가격으로 계약을 따냈다”며 “발주 건수 자체가 적으니 이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업체의 제 살 깎아 먹기식 저가 수주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칼자루를 쥔 발주사에서 수시로 미팅을 소집해 입찰 업체 간 가격 경쟁을 부추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는 “저가 수주한 조선업체들은 2~3년 후 실적 악화 현상을 또다시 겪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체결한 계약도 가격 재조정
발주사와 수주한 업체가 이미 체결한 계약의 가격과 사양(스펙)을 재조정하는 ‘스펙 다운’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품질은 유지하면서 꼭 필요하지 않은 사양은 빼거나 성능을 낮춰달라는 발주사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4월 셰브론으로부터 수주한 2조2000억원 규모의 북해 로즈뱅크 FPSO가 이 작업을 진행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작년 말부터 셰브론과 설계 변경 및 가격 재산정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당초 2017년 인도 예정이었지만 가격 재산정 작업으로 인도 시기가 2018년으로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플랜트 수주가 급감하면서 부품 제조사들도 경영난에 빠졌다. 포스코의 해양 플랜트 부품 제조 계열사인 포스코플랜텍은 업황 부진으로 올해 3분기까지 매출 4774억원, 영업손실 604억원을 기록했다. 작년(630억원)보다 적자 폭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코 관계자는 “현재 사업 전망이 어두운 조선과 해양 사업을 축소하고 철강 플랜트에 집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며 “지난 8월부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1개월 무급휴직을 시행하는 등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포스코플랜텍과 같은 중견 부품사와 케이블, 배관, 페인트 등을 담당하는 국내 300~400개 협력사는 규모가 영세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화학 플랜트도 수주난
삼성엔지니어링 GS건설 등 석유화학 플랜트 업계도 초비상 사태다. 중동 국가의 경우 원유 가격이 내려가면 재정수지가 악화하기 때문에 기존에 계획한 프로젝트의 발주를 미루거나 백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A건설사 영업담당 임원은 “당장 내년 1분기부터 입찰이 예정된 프로젝트들이 계획대로 진행될지 미지수”라고 우려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올해 1~11월 누적 석유화학 플랜트 수주액이 지난해와 비슷한 4조원에 머물렀다. 2012년(6조7000억원)보다 40% 급감한 수치다. 허문욱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 하락에 따른 석유화학 플랜트시장 위축이 예상돼 내년 수주 상황도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진석/이현일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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