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경찰 정보관 전국 3300여명…밑바닥 정보, 국정원도 못 당해

입력 2014-12-06 09:00
동네 주민센터부터 국회까지…
'정윤회 문건' 유출 논란으로 주목받는 정보 경찰

청와대 감찰문건 유출 경로로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압수 수색
경찰 인력의 3.2%인 정보 경찰, 각 분야서 저인망식 정보 수집
매달 5만7000여건 정보 축적
2000년 이후 청장 6명 배출, 고위급 승진 위한 필수 코스
'민간인 사찰한다' 비판 받기도


[ 홍선표 / 김태호 기자 ]
지난 3일 오전, 서울 예장동의 서울지방경찰청 정보분실에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비선 실세’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 씨에 대한 청와대 감찰문건의 유출 경로로 정보분실이 지목돼서다. 압수수색 영장을 앞세운 검찰 수사관들은 캐비닛 안에 담긴 각종 문서를 쓸어담았다.

이를 지켜보던 정보분실 소속 경찰 정보관들의 표정에선 참담함이 느껴졌다. 신분 노출을 피하려고 간판도 없는 사무실에서 일하며 사장(경정), 부사장(경감), 전무(경위) 등의 호칭을 사용할 정도로 보안에 신경 썼지만 이날 압수수색으로 정보분실이 언론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검찰이 압수한 내용물 중엔 그동안 경찰이 축적한 기밀정보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은 10년차 이상 베테랑 정보관들로만 구성된 핵심 정보부서 중 하나다. 경찰청 정보국 소속 한 경찰관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 유출로 논란이 되는 박모 경정은 수사와 감찰 분야에선 베테랑이지만 정보 파트 경력은 전무하다”며 “단 하루도 정보분실장으로 일하지 않은 박 경정 때문에 경찰 정보의 핵심부가 압수수색당하다니 착잡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정윤회 씨 감찰 문건 유출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을 정조준하면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경찰 정보조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선 경찰서 정보과부터 경찰청 정보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위마다 정보 전담 부서를 운영 중인 경찰은 국내 최대의 ‘정보기관’이기도 하다.

동네 주민센터와 대학, 정부부처, 국회 등 정보관들이 현장을 누비며 수집한 정보는 경우에 따라 청와대까지 전달돼 여론과 민심을 파악하는 주된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민감한 정보를 다루며 권력층과 접촉하는 경찰 정보업무는 승진을 위해 꼭 거쳐야 하는 코스로 꼽히기도 한다. 막강한 위상만큼 정보 경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부에선 경찰 정보관들이 범죄 첩보 수집보다는 민간인에 대한 동향 파악에 더 신경 쓴다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정보 경찰 3375명…국정원 못지않아

밑바닥 정보를 장악하는 경찰 정보력의 원천은 다른 정보기관을 압도하는 인원 수다. 첩보 활동을 전담하는 경찰 정보관 수는 지난해 기준 3375명(전체 경찰 인력의 3.2%)이다. 경찰 정보조직은 대통령령에 따라 △정치·경제·노동·사회·학원·종교·문화 등 사회 각 분야의 치안정보 수집 △정책정보 수집 △집회·시위 등 집단사태 관리 △신원조사 등을 담당한다. 사실상 사회 모든 분야의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일선 경찰서 정보과 소속 정보관들은 관내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기업, 시민단체, 노동조합, 병원 등에서 정보를 수집한다.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해 전날 수집한 정보를 보고서로 제출한 뒤 점심 무렵 사무실을 나와 각자가 담당하는 기관의 사람들을 만나 정보를 얻는 게 일반적인 일과다. 정보관 한 명이 한 달에 제출해야 하는 ‘견문보고’는 최소 17건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매달 5만7000여건의 각종 정보가 경찰 조직에 축적되는 셈이다.

국회와 중앙정부 부처, 대기업 본사, 대형 종교시설 등 일선 경찰서 정보과에서 담당하기 힘든 곳들은 경찰청과 지방경찰청 정보국에서 직접 첩보 수집에 나선다.

경찰청 정보국 산하 정보분실이 대표적인데, 대외적으로는 ‘한남동팀’으로 불린다. 한남동팀은 각각 정치·행정(1분실), 경제·노동(2분실), 시민단체·학원·종교(3분실) 등으로 영역을 나눠 첩보 활동을 펼친다. 1분실 소속 국회팀은 국정감사 시즌이 되면 경찰청과 지방경찰청 등에 대한 국회의원 질의내용을 사전에 파악하고, 예산안이 마련되는 시기엔 경찰 관련 예산의 증감 여부를 살펴 경찰청에 보고한다.

민생현안에서 대외정책까지 여론 파악

일상적인 첩보 수집 외에 정부 정책에 대한 여론동향 파악도 정보관의 주요 업무다. 일선 경찰서 정보관들은 매달 두 편씩 정책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온누리상품권 판매 동향 등과 같은 민생 현안에서부터 한·캐나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과 같은 대외정책에 이르기까지 정부 정책에 대한 여론동향을 파악해 보고서를 만든다. 정책보고서는 내용의 중요성에 따라 등급이 분류된다. 최고 등급인 A급 보고서는 청와대까지 전달되기도 한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 경우 높은 인사고과를 받기 때문에 A급 보고서 작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정보관들이 적지 않다. 한 일선 경찰서 정보관은 “정책보고서는 A, B, C, D 네 단계 등급이 있지만 90% 이상의 보고서가 아무런 등급조차 받지 못한다”며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정부 100대 정책과제’를 출력해 갖고 다니며 시간이 날 때마다 들여다 보며 아이디어를 찾는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서에는 상부에서 수시로 내려오는 특별 요구 첩보(SRI·special required information)를 처리하기 위한 4~5명 규모의 기획정보반도 따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주로 사무실에 머물며 대통령의 외국 방문 성과, 국토교통부의 전·월세 대책에 대한 평가, 관광경찰에 대한 사회 여론 등 지시받아 각종 주제에 대해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 교수 등과 접촉을 통해 의견을 취합한다. S경찰서 기획정보반 정보관은 “한 달에 이런 SRI가 20여건은 떨어진다”고 말했다.

2000년 이후 청장 10명 중 6명이 정보통

각종 정보를 다루는 경찰 정보분야는 승진을 위한 ‘사다리’로 통한다.전국 경찰 정보관들이 수집한 정보는 경찰청 정보국에서 최종적으로 정제된 뒤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실로 전달된다. 경찰 정보분야 고위 간부가 파견되는 사회안전비서관은 민감한 정보를 최고 권력층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면서 치안정감으로 승진하는 통로로 자리잡았다.

강신명 경찰청장과 구은수 서울경찰청장도 사회안전비서관을 거친 뒤 치안정감으로 승진했다.

경찰 정보조직의 수장인 경찰청 정보국장은 핵심 요직이다. 정보국장 상당수가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으로 영전했다. 강 청장 역시 정보국장을 지냈고, 이철성 사회안전비서관의 직전 보직도 정보국장이었다. 2000년 이후 취임한 경찰청장 중 10명 중 6명이 경찰청·지방경찰청의 정보조직 간부를 지냈다.

중간 간부급에서는 종로·남대문·영등포경찰서 정보과장이 요직으로 통한다. 청와대와 정부청사, 미국·일본대사관을 관할하는 종로서와 서울역광장 및 시청 앞 광장을 끼고 있어 대형집회가 잦은 남대문서, 국회를 담당하는 영등포서는 그 특성상 정보 분야의 중요성이 다른 경찰서보다 매우 크다. 인원도 30여명으로 외곽 경찰서 정보과 인원의 2~3배에 달한다.

범죄 첩보 수집엔 ‘소홀’ 비판도

사회 각 분야를 누비며 저인망식으로 정보를 쓸어담는 경찰 정보관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범죄 첩보 수집이라는 경찰 정보 분야 본연의 업무보다는 여론 동향과 유력 인사의 행보를 파악하는 데만 치중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선에서 ‘합법적인 정보수집과 민간 사찰이라는 경계의 아슬아슬한 담벼락 위를 늘 걷고 있는 기분’이라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현장에서 만난 정보관 중엔 “우리가 왜 VIP(대통령)의 외국 방문 성과와 관내 유력인사들의 동향에 대해 알아보고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같은 식구인 경찰 내부에서도 정보관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랭하다. 일선 경찰서는 각 동마다 담당자가 있을 정도로 폭넓은 정보망을 갖고 있지만 정보과를 통해 범죄 동향이 파악돼 형사과나 수사과로 전달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게 경찰관들의 얘기다. 정보를 다른 부서와 공유하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정보관의 상당수가 경찰 생활 대부분을 정보과에서만 보내다 보니 실제 범죄 수사에 필요한 감각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선 경찰서 형사과장은 “직접 수사 업무를 경험하지 못한 정보관들이다 보니 범죄 동향에 대한 파악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며 “범죄 첩보 기능을 강화하려면 베테랑 형사들을 정보과에 배치하는 등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선표/김태호 기자 rick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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