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사모펀드 출자 ‘뷰티컨테스트’ 없앨 때가 왔다

입력 2014-12-05 13:32
노란우산공제 최근 공개 입찰 없이 사모펀드 출자
정량점수와 PT 기법에 의존하는 선발 방식 '옥석' 가리기 어려워
객관성,공정성 집착 버려야


이 기사는 12월05일(08:38)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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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낸 공제 자금 2조원을 운용하는 노란우산공제회가 얼마전 블라인드형 사모펀드 출자를 진행하면서 ‘뷰티 컨테스트’ 없이 3곳의 운용사를 선정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입찰 공고를 내고, 서류 심사 및 프리젠테이션(PT) 과정을 거쳐 운용사를 선정하는 공개 선발 절차를 빼먹었다는 것이 비판의 이유다. 삐딱하게 보자면 ‘밀실’에서의 결정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욕먹을 만한 일이던가?

‘뷰티 컨테스트’라는 자조 섞인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 사모펀드 업계에서 출자를 받기란 마치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무대를 활보하는 일과 비슷하다. 이런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동안 쌓아 온 투자 실적(track record) 등 숫자로 계량화하기 쉬운 정량적 요소들과 심사 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감동적인 PT 기법이다.

사모펀드 출자 과정이 이처럼 공개 입찰 방식으로 진행된 데엔 사모펀드의 탄생 배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2004년 12월 소위 ‘사모펀드법’이 만들어지면서 관(官) 주도 아래 사모펀드 시장이 열렸다. 당시 금융감독 당국은 기업 경영권을 사고 파는 미국식 바이아웃(Buy-Out) 시장의 탄생을 염두에 뒀고, 실질적 수혜자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을 꼽았다. 미국의 기관들이 그러하듯 국내 기관들도 사모펀드라는 새로운 상품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의도였다.

2005년 국민연금이 첫번째 블라인드형 사모펀드를 조성하려고 했을 때 국민연금 입장에선 금융감독 당국의 ‘배려’를 충족시켜야 했다. 국내 기관들 중에선 첫번째 출자였던 만큼 뒷말이 나오지 않으려면 최대한 공정한 과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공개 입찰이었다. 사모펀드 운용사를 선정하는 일은 마치 조달청 등 정부 기관이 관급 물품을 생산할 민간 업체를 선정하는 일과 똑같은 것으로 취급받았다. 국민연금이 ‘세팅’한 공개 입찰 방식의 사모펀드 운용사 선정은 이후 ‘뷰티 컨테스트’로 불리며 관행으로 굳어져 왔다.

미국, 유럽, 홍콩, 일본 등 어디를 봐도 이같은 방식으로 사모펀드 운용사를 선정하는 곳은 없다. 연기금 관계자는 “사모펀드 교과서에도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해외 기관들은 어떻게 자금을 출자할까. 쉽게 말해 ‘수시 접수’다.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수시로 기관들을 찾아가 자신들의 장점을 설명하면서 마케팅을 한다. 기관들은 이렇게 전세게에서 찾아오는 운용사들을 눈여겨 보고 있다가 자신의 자산 배분 전략에 따라 그때그때 운용사들을 선정하는 식이다. 미리 정해진 기간에 선정 공고를 내고, 운용사 간 경쟁 제안을 통해 선정하는 일을 매우 이례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이유다.

공개 입찰 방식의 사모펀드 선정은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옥석’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예컨데 A 운용사에서 투자 실적이 좋은 매니저가 독립해 새로운 운용사 B를 설립했다고 하자. B가 국내 기관의 돈을 받기는 쉽지 않다. 정량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과거 투자 성과 점수가 ‘제로’이기 때문이다. 칼라일에서 독립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모건스탠리에서 독립한 한상원 한앤컴퍼니 대표가 독립하자마자 해외 주요 기관들로부터 수천억, 수조원의 돈을 끌어모았던 일이 국내에선 일어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단 한번의 PT를 얼마나 잘 하느냐가 당락을 결정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공개 선발 과정은 대개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 심사위원들을 두기 마련인데 이들은 수시로 사모펀드 운용사를 보면서 대표 매니저들과 소통해오던 사람들이 아니다. 2차 심사이자 사실상 당락을 가르는 PT에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느냐가 중요해지다보니 PT 잘하는 회사 자료를 입수해 공부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노란우산공제회가 이같은 ‘뷰티 컨테스트’의 문제점들을 잘 알기에 공개 선발 과정을 생략하고 사모펀드 운용사를 선발했는 지는 알기 어렵다. 사모펀드에 처음 출자한 기관인 만큼 ‘조용히’ 일을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의도야 어떻든 공개 선발을 거치지 않고 사모펀드에 출자한 것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린 것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라는 게 사모펀드 및 연기금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많은 전문가들은 ‘토종’ 사모펀드 시장이 성장하려면 돈을 받아 운용하는 GP 못지 않게 출자 기관(LP)들의 수준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 아부다비투자청(ADIA)이 최근 국내 사모펀드(스틱인베스트먼트)에 출자를 결정하면서 진행한 깐깐한 심사 과정은 눈여겨 볼 만하다. 스틱이 ADIA에 ‘마케팅’을 시작한 것은 적어도 5~6년 전이다. 1년에 수차례 찾아가며 담당자들을 설득한 끝에 작년 하반기에야 ADIA 담당자들이 현장 실사를 위해 방한했다.

90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굴리는 ADIA의 전문가들은 꼼꼼하고 치밀하기가 미국 정보기관인 CIA를 방불케했다. 스틱이 투자한 회사들을 직접 찾아가 경영 실태를 점검하고, 장부에 쓰여 있는 숫자와 맞는 지를 일일이 대조하는 것은 기본이다. 근무하는 주요 인력들의 ‘이해관계 일치(alignment of interest)’ 여부를 테스트하기 위해 각 매니저들 한명씩 단독 인터뷰를 몇 시간씩 했다고 한다. 심지어 전력이 갑자기 나갔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졌다. 핵심 운용역들의 사무실과 집까지 포함해 이용 가능한 컴퓨터가 동일한 배전망 안에 있다면 감점 사유라는 것이다. 부득이하게 전원이 나가더라도 최소한 한명은 컴퓨터로 자금 관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ADIA의 체크 포인트다. 공개 선발 과정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요소들을 ADIA는 점검 사항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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