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결국 사실상 복지 증세로 달려간 내년 예산

입력 2014-12-02 20:47
수정 2014-12-03 03:50
여야가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375조4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을 확정했다. 2002년 이후 12년 만에 법정기한 내 통과인 셈이다. 여야는 정부 요구예산에서 전체적으로 6000억원가량을 순삭감했다. 예산안 처리에서 여야가 합의하지 못할 경우 본회의 자동부의라는 국회선진화법이 위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연말이면 으레 되풀이됐던 몸싸움이나 본회의장 점거 등이 재연되지 않아 일단 보기에는 좋은 모양새다. 하지만 국회 예산심사 과정에서 쪽지나 카톡을 동원한 민원성 예산전쟁은 여전했다. 이런 구태의연한 모습도 물론 사라져야 할 구악이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예산으로 표현되는 나라살림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다.

내년 복지예산은 115조 7000억원 규모로 전체 예산의 30.8%다. 처음으로 30%를 넘었다. 물론 지자체들은 이미 예산의 50% 이상을 복지에 쓰는 곳이 대부분이다. 4대 공적 연금에 대한 지출도 지난해보다 10% 이상 증가했다. 누리과정(만 3~5세 영유아 무상보육)을 위해 각 지자체에 우회 지원하는 국고가 5064억원 더해졌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에 대한 논란은 이번 예산에서 해소된 것이 없다. 공무원 연금 개혁에 대한 어떤 합의도 없이 구멍난 만큼 이번에도 국고에서 부담하고 있다.

복지에 신경쓰다 보니 결국 세수가 부족하게 되고 이를 기업에 부담시킨 것이 이번 예산의 특징이다. 대기업에 대한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기본공제를 폐지했고 연구개발 세액공제의 당기분 공제율을 끌어내렸다. 이렇게 해서 얻는 세수가 5000억원 정도라고 한다. 사실상 증세인 셈이다. 물론 이 돈은 상당수 복지 예산으로 들어간다. 경제는 내수 침체 등 대내외 여건의 악화와 각종 규제로 인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내년 살림살이를 제대로 짜지 못하고 있는 기업이 대다수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예산은 복지만 수용하고 만 셈이다. 국회의 예산심의권이 과도하게 행사된다는 지적은 그대로 남았다. 밀실 야합 예산, 쪽지예산도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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