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꼬막

입력 2014-12-02 20:46
수정 2014-12-03 03:51
“보기 존 떡이 묵기도 좋드라고 외서댁을 딱 보자말자 가심이 찌르르허드란 말이여. 고 생각이 영축없이 들어맞어뿌렸는디. 쫄깃쫄깃헌 것이 꼭 겨울꼬막 맛이시.” 소설 《태백산맥》의 염상구 입담만큼이나 겨울꼬막은 쫄깃하고 맛있다. 간간하고 알큰하면서 배릿한 맛까지 배어 있다. 산란 후 살이 통통하게 차오르는 11~3월이 제철이다.

꼬막은 벌교산을 최고로 친다. 벌교 앞바다 여자만(汝自灣)의 갯벌이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꼬막은 참꼬막, 새꼬막, 피조개 세 종류로 나뉜다. 모양은 조금씩 다르다. 제일 비싼 참꼬막은 둥근 새색시 같고, 저렴한 새꼬막은 털북숭이 선머슴 같다. 덩치가 큰 피조개는 까만 털에 피까지 머금고 있어 금방 구분할 수 있다.

참꼬막은 밀물 때 잠겼다 썰물 때 드러나는 간석지에서 자라지만, 새꼬막은 수심이 더 깊은 곳에 산다. 참꼬막은 4년을 기다려 갯벌에 들어가 채취하고, 새꼬막은 2년 만에 배로 대량 채취한다. 참꼬막이 서너 배 비싸다. 피조개의 육즙이 붉은 것은 철을 함유한 헤모글로빈 때문이다. 피조개는 자연산보다 양식의 품질이 더 좋아 값도 3배나 높다. 피조개 앞에서 자연산 찾는 사람은 얼치기다.

꼬막에는 비타민, 단백질, 필수아미노산 등이 많다. 단백질은 꼬막 영양 성분 중 14%를 차지해 성장기 어린이와 뼈가 약한 노인에게 좋다. 간 기능을 좋게 하고 콜레스테롤을 막는 타우린,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베타인, 항산화와 노화 억제에 관여하는 셀레늄도 풍부하다.

최상의 요리 비법은 데치는 데에 있다. 30분 이상 소금물에 담가 뻘을 빼고 깨끗이 씻어 냄비에 넣은 뒤 거품이 오르면 금방 불을 꺼야 한다. 푹 삶으면 질겨지므로 입을 살짝 벌렸을 때 꺼내는 게 포인트다. 벌교 사람들의 진짜 노하우는 따로 있다. 물을 붓지 말고 마른 냄비에 구워내듯 익히는 것이다. 그래야 꼬막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맛도 좋고 영양도 뛰어난 꼬막은 겨울 한철 누구나 ‘착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올해는 산지 가격이 뛰는 바람에 꼬막값이 금값이 돼버렸다. 여름 고수온 현상에 최근의 이상한파까지 겹쳐 수확량이 예년의 절반으로 줄었다.

이래저래 ‘꼬막 삼총사’ 맛을 다 보기는 어렵게 됐다. 그러나 쫄깃하고 감칠맛나는 겨울 진객을 그냥 보내기도 아쉽다. 온가족이 저녁 밥상에 둘러앉아 숟가락으로 꼬막 궁둥이를 까며 모처럼 웃음꽃을 피워보는 건 어떨까. 발그레한 외서댁 얼굴빛을 닮은 반주도 한 잔 곁들이면서.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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