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규제의 덫'…수십조 시장 날린다

입력 2014-12-01 22:05
수정 2014-12-02 04:19
알리페이·애플페이 약진
한국만 규제에 '제자리'
모바일금융 '안방' 뺏길판

핀테크 벤처에 자본금 400억 요구…'꼼수 규제'


[ 안정락 / 임근호 기자 ] 금융(financial)과 기술(technology)이 융합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핀테크(fintech)’에 뛰어든 국내 벤처기업들이 수개월씩 걸리는 까다로운 행정절차와 각종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최근 주목받는 국내 핀테크 기업 중 하나인 한국NFC의 황승익 대표. 그는 모바일 쇼핑몰에서 결제할 때 신용카드 번호 등을 입력하지 않고, 스마트폰에 신용카드를 갖다 대기만 하면 결제가 이뤄지는 ‘셀프 카드 결제 시스템’을 개발, 특허를 받아 지난 3월 회사를 창업했다.

하지만 황 대표는 본격적인 사업은 시작도 못한 채 8개월째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등 관공서만 드나들고 있다. 그는 “금감원 담당자는 전화조차 잘 받아주지 않았다”며 “제휴를 맺어야 하는 신용카드사는 금감원에서 ‘보안성 심사’를 먼저 받으라고 하고, 금감원이 제시한 수십개의 보안성 심사 기준은 벤처기업이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 힘든 것이었다”고 말했다.

전자결제 전문회사인 페이게이트는 6월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금감원의 보안성 심사를 통과한 간편결제 서비스를 제공했다. 하지만 국내 카드사들이 불분명한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서비스를 중단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9월부터 비자 마스타 등 해외 카드사와 손잡고 알라딘에 간편결제 기능을 넣었다.

핀테크 벤처인 비바리퍼블리카는 규제 탓에 한국에서 창업 자금을 모으지 못한 경우다.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중소기업창업지원법상 국내 벤처캐피털은 금융업에 투자하지 못하게 돼 있어 결국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온 해외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공인인증서 사용을 강제했던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하고 액티브X 사용을 폐지하는 등 겉으로는 빗장을 풀고 있다. 하지만 안으로는 자율 규제 형식을 띤 ‘꼼수 규제’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게 핀테크 업계의 지적이다.

지난 10월 초 신용카드사들의 모임인 여신금융협회는 페이게이트와 같은 전자결제대행(PG) 업체가 카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PG사가 카드 정보를 저장해두면 카드번호 입력 등 번거로운 절차 없이 미국 아마존 결제처럼 클릭 한 번에 물건을 사는 간편결제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여신금융협회는 신용카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PG사 기준을 자기자본 400억원 이상, 순부채 비율 200% 이하로 내걸었다. KG이니시스 등 전문 PG업체 33개사 중에선 불과 5~6개사만 이 기준을 통과할 수 있다. 박소영 페이게이트 대표는 “전문 PG사들은 모두 금융거래 사고 보험에 가입이 돼 있는 데도 높은 자기자본 요건을 요구하는 것은 불필요한 규제”라고 말했다.

핀테크 산업 발전을 위해 최근 한국핀테크포럼을 발족한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은 “중국은 스마트폰을 통한 모바일 결제가 급속히 확산되는 등 핀테크 분야에서 한국을 훨씬 앞서고 있다”며 “중국의 알리페이나 미국의 애플페이 등 글로벌 간편결제 시스템이 한국시장을 파고들기 시작하면 우리는 ‘금융 식민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정부와 신용카드사들이 보안성과 개인정보 보호를 명분으로 규제에 연연하다간 한국은 ‘핀테크의 갈라파고스’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정락/임근호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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