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상 수만명 '1000원짜리 트럭' 타고 北 전역서 장사 행렬

입력 2014-11-30 20:59
김정은 집권 3년…격랑의 북한경제
(1) 끝장난 배급제…시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뭘 하든 공짜 없다"
장마당 밤장사도 성황…손전등 켜고 거래하기도

"내년부터 인센티브 확대"
국영공장 외국 경영자 영입…자본주의식 성과제 도입


[ 조일훈/김유미 기자 ]

최근 북한에 풍년이 든 것은 1차적으로 기상여건이 좋았기 때문이다. 거의 연례적으로 농작물에 피해를 끼쳤던 가뭄과 태풍이 잠잠했다는 얘기다. 올해 북한의 농작물 생산량은 10년 전과 비교해 20% 이상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가을 추수기엔 함경북도 청진에서 탈곡용 트랙터 200개(대당 한국돈 250만원 상당)를 한꺼번에 주문해 중국 업체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초과 생산분 다 가져라”

식량 사정이 좋아지면서 북한 곳곳의 옥수수밭도 속속 논밭으로 바뀌고 있다는 전언이다. 옌볜에서 기계부속품 판매사업을 하는 A씨는 “얼마 전 나진으로 향하던 도중 도로 양쪽에 있던 옥수수밭에 모두 벼가 자라난 것을 보고 너무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며 “개간을 할 여유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농촌의 이 같은 변화는 날씨 요인 외에 당국의 정책적 변화도 한몫하고 있다. 공식화된 적은 없지만 북한 당국은 2012년 이른바 6·28조치를 내부적으로 발표했다. 김정은이 ‘우리 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라고 부르는 농업 개혁이다.

협동농장의 분조 규모를 10~25명에서 4~6명으로 줄이고 성과에 따라 수확물을 차등배분하는 원칙이 포함됐다. 목표생산량을 달성할 경우 생산량의 70%는 국가가, 30%는 분조가 가져갈 수 있도록 자율 처분권을 부여한 것이 핵심이다. 나아가 초과 달성할 경우엔 초과분 전체를 분조가 갖도록 했다. 일종의 자본주의식 인센티브제로 동기 부여를 통해 전체 수확량을 늘리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조치였다.

식품 국산화 총력

김정은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올해 5월 말 또 다른 발표(5·30조치)를 내놓았다. 내년부터 모든 협동농장과 기업소에 자율 경영제를 본격 도입하고 가족 한 명당 땅 3300㎡를 지급하고 국가가 수확물의 40%를, 개인이 60%를 가져가도록 하겠다는 것. 내용이 워낙 파격적이어서 진위를 의심하는 시각도 없지 않지만 대체로 맞는 얘기라는 전언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농업뿐만 아니라 제조 건설 등에도 인센티브제가 급속 확산되고 있다. 북한의 국영 공장은 놀고 있는 곳이 많다. 중국산 공산품에 비해 품질 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데다 전력과 용수 부족으로 가동률을 끌어올리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출경쟁력이 있는 생수산업과 북한 내 장마당에서 중국산 제품과 겨뤄볼 만한 생필품 쪽에선 공장을 돌려보겠다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 당국은 특히 식품 국산화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중국산 폐유가 식용유로 둔갑해 수입되는 바람에 집단 식중독이 발생하는 등 그동안 품질이 떨어지는 중국산 가공식품 때문에 주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투자금과 시설 확보다. 북한 당국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국인, 특히 중국인을 전문경영인으로 기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 내 경영자로는 중국산 설비 부속품 하나만 고장이 나도 몇 달을 허송세월해야 하는 상황이다. 북한의 항구도시인 강원도 원산에서 국영공장 인수를 검토 중인 중국인 사업가 B씨는 “중국보다 인건비가 싸고 식품 원자재도 비교적 경쟁력이 있는 만큼 수익을 갖고 나갈 수 있는 보장만 확실하면 투자자를 모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불법 야간시장도 활개

북한 생산시스템의 이런 변화는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는 장마당 유통과 결합해 의외의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장마당은 지역별로 편차가 있지만 나진과 청진은 500개, 평양의 큰 곳은 100개 이상의 매대를 마련해놓고 있다. 당국에 일정 금액의 자릿세를 내고 나머지 수익은 개인이 다 갖는다.

나진에서 가장 큰 장마당은 옌볜에서 가장 큰 시장인 연볜서시장과 규모가 맞먹는다. 성수기 때는 하루에 수만명이 모여 장사진을 친다고 한다. 영업시간대는 오후 2시에서 6시까지로 제한돼 있지만 불법인 밤장사도 성황이다. 전력 부족으로 사방이 캄캄한데도 상인들이 손전등을 들고 나와서 장사를 한다는 것. 물론 이를 눈감아주고 뒷돈을 받는 관리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장마당에는 없는 게 없다. 북한 당국도 아주 귀한 해삼 도라지 송이버섯 같은 것만 거래를 통제하고 나머지는 묵인한다.

장마당을 오가는 사람 중에는 큰 도시에서 물건을 사다 작은 도시로 뿌리는 도매상들도 많다. 북한 전역에 줄잡아 수만명이다.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고 당국의 이동통제도 받는 이들은 대형트럭이나 짐차에 몸을 싣고 장마당에 들어선다. 거리에 따라 북한 돈으로 1000~2000원을 운전수에게 쥐여줘야 한다. 북한 장마당을 한 달에 한 번꼴로 찾는다는 한 중국 상인의 전언이다.

“요즘 북한 사람들 눈에는 모든 게 돈벌이 수단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어디서 뭘해도 공짜가 없어요. 자본주의 물이 들었다고 서로 비난하지도 못합니다. 바로 눈앞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무슨 이념 타령을 하겠습니까.”

■ 포전담당제

북한이 최근 일부 도입한 농가 책임 생산제도. 농장의 경작 단위를 기존 ‘분조(10~25명)’에서 가족 중심의 새로운 조(5명 안팎)로 세분화하는 게 골자다. 포전(圃田)은 논밭의 북한말이다.

조일훈/김유미 기자 jih@hankyung.com

특별취재팀 선양·단둥·옌볜·훈춘=조일훈 경제부장/김병언 차장(영상정보부)/김태완 차장(국제부)/김유미(경제부)/전예진(정치부) 기자/천용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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