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화되는 청소년 탈선을 막아라
SNS 생년월일 정보 조작해 신분증 대신 제시 후 담배 구입
나이들어 보이려 여장하기도
단속 건수 매년 줄어들지만 탈선 방식은 더욱 교묘해져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해 신분 확인 때 곳곳서 마찰
'대체신분증' 도입 검토 필요
[ 김태호 / 윤희은 기자 ]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3일 밤. 서울 서대문경찰서 신촌지구대에 한 건의 제보전화가 걸려왔다. “신촌 명물거리 근처의 한 술집에서 고3 학생들이 ‘파티’를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구대원들은 즉시 제보받은 술집으로 출동했다. 하지만 출입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의아하게 여긴 지구대원들은 인근의 건물 세입자들을 수소문한 끝에 뒷문을 이용해야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뒷문을 통해 들어간 술집 내부에선 미성년자로 보이는 학생 30여명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음주를 즐기고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학생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청소년 출입이 가능한 술집’을 소개한 글을 공유한 뒤 이 술집을 찾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술집 주인 이모씨를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체포해 서부지검으로 송치했다. 이씨는 법원 판결과 별도로 서대문구청으로부터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받게 될 예정이다.
수능 이후 청소년들의 음주와 흡연, 폭행시비 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경찰이 ‘청소년 유해환경 집중단속’을 벌이고 있다. 특히 15~18일엔 여성가족부와 서울시도 참여해 경찰과 함께 합동단속을 진행했다. 단속반에 따르면 올해 집중단속 기간엔 학생들의 탈선 사례와 유해업소 단속 건수는 지난해보다 다소 줄었다고 한다.
그러나 SNS를 활용한 유해업소 정보공유 및 신분조작 등 학생들의 탈선 방식은 예전보다 지능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이에 맞는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SNS로 생일 조작…여장까지
경찰과 여성가족부, 서울시의 합동단속 마지막 날인 18일 밤 9시께. 서울 갈현동 길마공원 주변의 어두운 골목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 3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순찰을 돌던 여가부 청소년보호중앙점검단 소속 편원석 경사가 다가가자 학생들은 눈치를 챘는지 바로 담뱃불을 껐다.
“남은 담배를 모두 꺼내라”는 말에 학생들은 각자 들고 있던 담뱃갑을 내놓기 시작했다. 편 경사와 단속반은 학생들을 공원 벤치에 앉힌 뒤 진술서를 받았다. 담배를 산 경위를 조사해 담배를 판매한 가게를 역추적하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약 10일 전 은평구 대조동의 한 편의점에서 담배를 구입했다고 진술했다. 담배를 구입하는 과정에는 SNS가 활용됐다. 페이스북에는 개인의 생년월일이 뜨는데 담배를 구입하기 전 미리 생년월일을 바꿔 놓은 것이다.
당시 편의점 점원이 신분증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하자 한 학생은 “신분증이 없으니 페이스북을 보여 주겠다”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점원은 별다른 의심 없이 학생들에게 담배를 팔았다.
수능 당일엔 단발머리의 남자 중학생이 서울 천호동에서 여장을 한 채 담배를 구입하다 적발되는 황당한 사건도 발생했다. 이 학생은 경찰 조사에서 단발머리라서 여성으로 변장하면 실제 나이보다 훨씬 들어 보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그동안 짙은 화장에 여성복장을 갖추고 천호동 일대 구멍가게에서 수차례 담배를 구입해 피운 것으로 드러났다. 임무기 은평경찰서 아동청소년계장은 “담배나 술을 사기 위해 학생들이 신분을 조작하는 방식이 점점 지능화되고 있다”며 “학생이라고 판단되면 신분증을 제시하더라도 동일한 인물인지, 위조된 흔적은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밤 10시 이후 술집으로 몰려
밤 10시가 지나자 단속반들의 움직임은 더욱 분주해졌다. 10시 이후엔 PC방과 노래방 등에 청소년 출입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신촌동 일대를 순찰하던 합동단속반도 10시20분께 PC방 한 곳을 급습했다. PC방을 둘러보던 단속반은 다소 어려 보이는 두 명에게 다가가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그러나 한동안 묵묵부답으로 앉아 있다가 스스로 미성년자라고 털어놨다.
이 학생들은 이 PC방에 회원으로 가입할 때 생년월일을 속였지만, 비슷한 또래의 아르바이트생은 신분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한 번 가입한 뒤엔 아무런 확인절차 없이 PC방에 들러 밤늦게까지 게임을 즐긴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시간 갈현동 번화가인 로데오거리에도 노래방과 PC방에 머물던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PC방과 노래방 출입이 금지되는 이 시간부터는 술집이 주요 단속 대상이다. 학생들이 PC방, 노래방 등에 머물다 단속이 느슨해지는 밤 늦게 술집을 찾는 경우가 많아서다.
하지만 이날 은평구 일대에서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다 단속에 걸린 곳은 없었다. 대부분 가게들이 주민등록증과 지문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인식기를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수능 이후 집중단속’ 방침이 알려진 탓인지 손님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미리 장부에 적어 뒀다가 단속반에게 보여주는 가게도 눈에 띄었다.
최근 3년간 청소년 보호법 위반 사범 단속 건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2012년 청소년 보호법 위반 사범이 1만4067명에 달했지만, 지난해에는 1만3438명으로 줄었다. 올해는 지난달까지 6992명의 위반 사범이 적발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1만144명보다 약 3000명 감소한 수치다.
우지완 경찰청 청소년계장은 “수능 이후 집중단속 방침을 지속적으로 홍보한데다 학교폭력 전담 경찰관들이 사전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방교육을 한 게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체신분증 도입도 검토해야”
단속건수는 매년 줄고 있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신분증이 없을 경우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더라도 손님이 거부하면 신분 확인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업주와 손님들 간 마찰이 자주 발생한다.
서대문 합동단속에 적발된 PC방 점원도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를 통째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생년월일만 받아 회원으로 가입시키다 보니 미성년자가 거짓으로 생년월일을 말해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커지면서 가게에 설치된 신분증 지문인식기를 거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은평구 일대에서는 지난 7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손님들이 업주를 신고하기도 했다. 가게에서 신분 확인을 위해 ‘지문인식’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인식기에 주민등록증을 삽입하고 지문을 대면 얼굴 사진과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지문정보 등이 자동적으로 컴퓨터에 저장되는데, 손님들이 이 같은 행위가 사전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없도록 한 개인정보보호법 22, 23조에 저촉된다고 신고한 것이다. 업소 주인들은 “신분 확인을 확실하게 하려다 보면 개인정보보호법 문제로 손님과 언쟁을 벌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성년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일이 복잡하고 까다롭기 때문에 미성년자인 줄 알면서도 속는 척하는 가게가 적지 않은 것 같다”며 “개인정보 유출 소지를 없애면서 미성년자를 보호하려면 사진, 이름, 생년월일만 간단히 표기한 ‘대체신분증’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호/윤희은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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