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성 기자의 IT's U
LG전자 폴더형 스마트폰'와인 스마트'개발팀
"노인들을 위한 스마트폰 만들자"
터치 대신 버튼…소통기능 강화
약해진 시력·청력까지 제품 반영
[ 김민성 기자 ]
롱텀에볼루션(LTE) 망을 탄 무선 데이터가 방방곡곡에 폭우처럼 쏟아지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3세대(3G)망은 구석기 유물처럼 답답해서 못 쓸 지경이다. 꿈의 이동통신이라는 5G의 세계 최초 상용화도 코앞이다.
그만큼 정보기술(IT) 선진국인 한국은 정보 격차가 적어야 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당장 아버지 어머니를 떠올려보라. 젊은이들은 모바일 검색·게임에 클라우드 정보까지 익숙하게 활용하지만 노인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이든 부모 대다수는 최신 스마트폰이 아닌 피처폰의 대명사 폴더폰을 아직 쓴다. 각종 ‘대란’으로 공짜 스마트폰이 넘쳐나도 그림의 떡이다.
IT 소외계층인 ‘우리 부모님’을 안쓰러워하며 스마트폰을 만든 이들이 있다. LG전자의 폴더형 스마트폰 ‘와인 스마트’ 개발자들이다. 상품기획그룹의 이지영 과장과 UX실 문윤정 선임, 디자인연구소 지승현 주임은 지난해 9월부터 1년간 ‘노인’만을 분석했다. 50대 이상을 상대로 스마트폰을 구매하고 싶은 이유와 무엇이 불편한지를 정량적으로 따졌다.
처음 노인층을 주목한 이유는 유일하게 스마트폰 보급 여력이 남은 연령층이기 때문이었다. 국내 스마트폰 보급 대수는 4000만대에 달한다. 누구나 스마트폰 하나는 있다. 하지만 50대 이상 보급률은 40%, 60대로 가면 20~30% 수준으로 급락한다. 기회의 영역이었다.
문제는 노인에게 스마트폰은 너무 어려운 기계라는 점. 스마트폰 진입장벽부터 찾아야 했다. 젊은이의 전유물인 스마트폰의 장단점을 노인의 입장에서 발라내야 했다. 동시에 피처폰을 쓸 때 무엇이 불편한지, 스마트폰을 쓴다면 어떤 기능이 있으면 좋겠는지 조사했다. 한 번에 10~15명 어르신을 선정해 꼼꼼히 질문하는 방식이었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스마트폰을 쓰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가족 친구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싶어서였다. 스마트폰을 못 쓰면 소외된 느낌을 받는다는 토로에 이어 자신들을 위한 스마트폰은 왜 없는지 따지는 노인도 있었다.
폴더폰의 불편함은 화면이 작다, 화질이 별로다, 저장 용량이 부족하다였다. 손주 예쁜 사진 찍어봤자 선명하지도 않고, 수백장 저장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장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물리 버튼이 그랬다. 노인은 스마트폰 터치 방식에 거부감이 있다. 터치하면 먹히는지 잘 구별하지 못했다. 아이콘, 토글은 용어부터 어렵다. 반면 폴더폰은 통화, 끊기, 메시지에 숫자 버튼까지 누르는 시각성이 분명하다.
해답은 폴더형 물리 버튼을 탑재한 스마트폰에 소통 기능을 특화하는 것이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을지언정 노인을 위한 스마트폰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폴더폰 안에 800만 화소 전면 카메라와 IPS(광시야각) LCD를 탑재해 선명도를 높였다. 저장 공간은 4기가바이트(GB)로 늘렸다. 큼지막한 2MB 사진 2000장은 찍고 저장할 만큼 크다.
개발자들은 노인생애체험센터도 찾아갔다. 약해진 청력을 체험하는 귀마개를 하고, 노안·백내장에 따른 시력 저하를 느낄 수 있는 안경을 쓴 상태에서 노인의 하루를 살아봤다. 노안용 안경을 쓰면 빨간 색은 보라색처럼 보이는 등 색체 왜곡이 일어났다. 물체가 선명하게 보이지도 않고 겹쳐 보였다.
덕분에 하나 더 깨달았다. 노인은 몸이 조금만 흔들려도 문자 메시지를 작성하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빨강 등은 색감 왜곡이 심하지만 그마나 녹색은 채도가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와인스마트 물리 버튼 크기를 가로 14.4㎜, 세로 7.6㎜로 더 키웠다. 흔들리는 버스나 전철, 차 안에서도 문자를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전작보다 25% 너비를 키운 것이다. 기본 화면 바탕에는 잔디밭 사진을 넣었다. 선명한 녹색을 부각하기 위해서였다. 1와트(W) 고출력 스피커도 달았다. 이어폰보다 스피커로 음악을 빵빵하게 듣고 싶어하는 분들을 위해서다.
업계 최초로 국내 대표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전용 물리 버튼도 넣었다. 다운로드 번거로움까지 없애기 위해 앱은 선탑재했다. 수차례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하는 일반 카카오톡 앱과는 다른 와인스마트 전용 앱이다. ‘OK’ 버튼 몇 번만 누르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인증 절차를 줄였다. 전용 앱이지만 일반 앱과 동시에 업데이트된다.
개발자들은 하나같이 부모를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했다. 스마트폰 기술이 젊은 세대 중심으로 발전할 때 정작 소외된 채 살아온 아버지 어머니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들었다는 보람이 가장 크다는 소감이었다.
정보 격차를 줄여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나라, 모르는 타인뿐만 아니라 내 가장 가까운 이들조차 차별과 소외 속에 방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민성 한경닷컴 기자 m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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