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1일부터 시행될 새 도서정가제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직설적인 비판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책값을 높이고 비효율적인 기업을 시장에 잔류시켜 소비자 후생의 손실을 초래한다는 분석이다. 책값이 오르면 책 수요도 줄게 돼 오히려 서점·출판업계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KDI는 새 도서정가제가 3년마다 상황을 평가해 재검토하게 돼 있지만 필요하면 당장이라도 고치고, 업계와 소비자 의견을 듣는 협의체 구성을 권고했다. 도서정가제가 정부 싱크탱크로부터도 비판받는 지경이 됐다.
새 도서정가제는 모든 책의 할인율을 최대 15%로 제한하는 게 골자다. 지금까진 신간은 19%까지 깎아줄 수 있고, 참고서 실용서나 발간 18개월이 지난 구간도서는 할인폭에 제한이 없었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새 도서정가제가 지나친 저가 할인을 막아 중소서점을 보호하고, 출판사들이 할인을 염두에 두고 책값을 높게 매기지 못하도록 규제할 것이라며 정가제를 강행할 태세다.
도서시장의 어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서점이 1625곳으로 10년 새 622곳이나 줄었고, 등록 출판사 4만6395곳 중 실제 출판활동을 하는 곳은 15.1%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싸게 파는 것을 규제하는 것이 서점·출판업계를 살리는 길인지 의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국민이 책을 읽지 않는 데 있다. 출판문화진흥원에 따르면 성인의 1인당 독서량은 한 달 0.8권으로 OECD 꼴찌이고, 유엔 회원국 중 161위다. 해마다 출판·판매량이 줄어 대형·온라인서점들조차 고전 중이다. 지금 문체부가 고민할 것은 할인폭 규제가 아니라 국민 독서량을 늘리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새 도서정가제가 ‘제2의 단통법’이 될 것이란 우려가 비등하다. 단통법이든 도서정가제든 명분은 그럴싸하지만 시장은 관료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구상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법으로 만들면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는 단통법 하나로 충분하다. 대통령은 ‘규제 단두대’를 역설하는데 관료들은 뒤에서 규제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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