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산업 큰별…경제단체·체육계서도 왕성한 활동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향년 92세로 8일 별세했다.
코오롱그룹은 이 명예회장이 이날 노환으로 작고했다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다.
이 명예회장은 1996년 일선에서 은퇴한 후 취미인 그림 그리기로 소일하거나, 그룹 산하 오운문화재단의 복지사업과 캠페인 등에 전념해왔다. 오운(五雲)은 이원만 창업주의 호다.
경북 영일 출신인 이 명예회장은 이원만 선대회장이 1935년 일본 오사카에서 모자 사업을 시작할 때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흥국상고와 와세다대학을 졸업했으며, 고국으로 건너온 후인 1957년 부친을 도와 대구에 코오롱그룹의 모태인 한국나일론을 설립했다.
이 명예회장은 부친이 정계에 진출한 뒤 국내 첫 나일론 공장을 운영하면서 당시 폭발적인 나일론 수요에 힘입어 한국의 화학섬유산업 시대를 열었다.
국내 섬유산업 1세대로 1960년대부터 수출 전선에서 일익을 담당했다.
고인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코오롱상사, 코오롱나일론, 코오롱폴리에스터의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코오롱그룹의 외형을 키웠다.
1982년부터 1995년까지 14년간이나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지내며 경총의 기반을 닦았고 1989년에는 경제단체협의회 회장을 맡는 등 경제단체를 앞장서 이끌었다.
1970년 여자실업농구연맹 회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 1980∼1990년대 대한농구협회장, 대한골프협회장 등을 지내며 한국 체육계 발전에도 한몫했다.
등산을 즐겼던 이 명예회장은 마라톤에도 남다른 관심을 둬 고교마라톤대회를 만들고 코오롱 마라톤팀을 운영하면서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등 대표 선수들을 길러내는 데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금탑산업훈장(1982년·2004년), 체육훈장 백마장(1982년), 국민훈장 무궁화장(1992년· 2004년), 체육훈장 청룡장(1992년·2004년)을 받았다.
자서전으로 '벌기보다 쓰기가, 살기보다 죽기가'(1992년), 경영어록집으로는 '이상은 높게 눈은 아래로'(1982년)가 있다.
미술에도 관심을 보여 직접 그린 그림으로 1992년 고희전, 2001년 팔순전 등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이웅열 코오롱 회장 등 1남5녀를 뒀다.
한경닷컴 산업경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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