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호 선임기자 리포트
정부·지자체 공동부담 사업…기초연금·무상보육 등 956개
올 국고보조사업 61조 달해…지방재정 자율성 갈수록 취약
지자체 "新중앙집권화 심화"…정부 "자체예산 스스로 마련을"
[ 박기호 기자 ]
전북 남원역 이전으로 2009년 확장 개통된 신역사대로. 이 가운데 향교동~시청로 1.3㎞ 구간은 6년째 옛날길 그대로 미확장 상태다.
남원시 관계자는 “예산의 대부분을 국고보조사업(매칭사업)에 쓰고 있어 자체 사업 예산을 짜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내년에 잡힌 확장 사업도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남원시는 재정자립도가 10.05%로 기초단체 중 최하위다. 지난해 예산 4970억원 가운데 4449억원을 매칭사업에 썼다.
○목소리 높이는 지자체
민선 6기를 맞은 지방자치단체장과 교육감들이 ‘복지 디폴트’를 앞세워 중앙정부에 재정지원을 압박하는 것은 남원시와 비슷한 이유에서다. 매칭사업이 너무 많아 자체 사업을 할 수가 없다는 반발이다.
매칭사업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일정 비율로 비용을 부담해 진행하는 사업으로 대규모 건설사업, 복지 관련 사업 등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이시종 충북지사는 “3조원가량의 충청북도 연간 예산 중 자체활용 예산은 2000억여원에 불과할 정도여서 재정 차원에서 국가에 더욱 의존하는 신중앙집권화가 심화하고 있다”며 “지자체장은 주민들이 선출할 뿐이지 사실은 국가의 지방청장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이어 “정부가 지자체에 재정부담을 주는 매칭사업을 할 때에는 반드시 지자체와 사전협의를 거쳐야 한다”며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특별법을 마련해 의원 입법 방식으로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문화시설 확충 운영 40%, 체육진흥시설 지원 30%, 청소년시설 확충 70~88% 등 유사 사업임에도 보조율이 제각각인 점도 지자체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늘어난 매칭사업
매칭사업은 2005년 359개에서 2010년 1076개까지 늘었다가 2011년 1024개, 2012년 984개로 줄었다.
지난해엔 956개로 더 줄었지만 여전히 900개를 웃돌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지난해 무상보육에 이어 올해 7월 기초연금이 시행되면서 지자체들의 부담은 훨씬 커졌다. 시도지사협의회는 국고보조사업 규모는 2007년 32조원(지방예산의 약 28%)에서 올해 61조원(37%)으로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국비 보조율은 같은 기간 68.4%에서 61.8%로 낮아졌다.
매칭사업은 법령상 중앙정부의 획일적인 기준과 지침을 이행해야 하는 데다 인건비보다도 먼저 예산에 편성해야 한다. 매칭사업이 많을수록 지방재정의 자율성은 취약해지는 구조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취득세 영구 인하 등의 조치로 지방세입 여건은 악화일로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은 8 대 2로 굳어졌고 재정자립도는 63.5%에서 50.3%로 계속 하락했다. 226개 시·군·구 가운데 54.4%인 125개는 지방세로 지자체 공무원 인건비도 해결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관계자는 “현재 11%인 지방소비세율을 16%로 즉시 올리고 단계적으로 20%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칭 불가피 vs 합리적 개선 필요
정부는 “국세로 걷은 돈을 재원으로 삼아 지방소비세 교부금 등의 형태로 지자체를 지원하는 만큼 국가 차원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지자체들이 비용을 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새로 선출된 지자체장들이 대규모 택지나 지하철 경전철 호화청사 등 신규 사업을 무분별하게 추진한 것도 지방 재정을 악화시킨 요인인 만큼 예산 수립 때 정밀한 잣대를 들이대 자체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가 차원의 복지 정책이 늘고 있어 지방정부의 복지재원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지자체들이 디폴트를 앞세워 거세게 반발하는 만큼 수용 가능한 합리적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손희준 청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재정 구조를 지방세 세외수입 등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전면 인정하는 자율재정과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협력재정으로 나눠 자율재정은 주민과 의회가 전적으로 책임지게 하고 협력재정은 중앙·지방정부 간 성과 계약을 통해 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 매칭사업
국가가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보조금법) 등에 따라 지원하는 국비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지방비로 부담하는 재원을 매칭해 벌이는 사업. 법령으로 지방재원 매칭을 강제하고 있어 이 사업이 늘어날수록 지자체의 예산 재량권은 줄어든다.
박기호 선임기자 kh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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