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사이버 검열' 허용해야 하나

입력 2014-10-17 20:54
수정 2014-10-18 08:14
대한민국이 ‘사이버 검열’ 논란으로 뜨겁다. 모바일 메신저 이용자들은 독일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으로 이탈하고 있고, 카카오톡을 운영하는 다음카카오의 이석우 공동대표는 머리 숙여 사과해야 했다.

지난 1일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세월호 집회를 수사하던 검찰과 경찰이 자신의 카카오톡 계정을 압수수색해 대화 내역을 모조리 들여다봤다”고 폭로하면서다. 앞서 지난달 25일 검찰이 인터넷 포털 게시판과 커뮤니티의 글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전담팀’을 발족한 것이 불씨가 됐다.

정보 전달 수단이 인터넷과 스마트폰 중심으로 바뀌면서 개인 사생활의 보호와 범죄 수사를 위한 편의 사이에서 갈등이 커져가고 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최근 애플이 아이폰6에 들어가는 새 운영체제 iOS8을 내놓으면서 암호를 강화하자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강력 반발했다. 애플 자신도 풀 수 없는 암호화 기술을 적용한 탓에 영장을 들고가도 애플이 범죄자의 휴대폰 암호를 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상황도 비슷하다. 카카오의 이 대표가 ‘사이버 망명’을 막기 위해 “앞으로 수사기관의 감청 영장엔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카카오의 방침에 대해 국가 안보와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중범죄 수사를 위해선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의 감청 수사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거세다.

○찬성 살인·마약 등 중죄 감청은 적법…SNS도 법률 어기면 처벌 가능

적법한 감청 불응 땐 공무집행방회죄 등 해당

최근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포털사이트 등에 대한 소위 사이버 검열 문제를 놓고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검찰이나 경찰의 사이버 검열이 두려워 사이버 망명이 이뤄지고 있다고도 한다. 매일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카카오톡을 사용하고 있는 필자에게도 신경 쓰이는 일이다. 얼마 전에는 텔레그램 설치와 사용법을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카카오톡 메시지도 받았다.

그러나 이는 매우 간단한 문제다.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대로 하면 되기 때문이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SNS나 컴퓨터통신 등 전기통신을 사용할 자유와 권리도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형사소송법이나 통신비밀보호법은 전기통신에 대한 감청의 요건, 절차 등을 명시하고 이를 위반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 및 불법 감청에 의한 증거능력 부정 등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

사이버 검열이라는 용어는 불법 검열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카카오톡을 실시간 검열한다’는 말의 의미는 ‘수사기관이 위법하게 수시로 카카오톡의 통신 내용을 살펴본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런 의미의 사이버 검열은 당연히 금지되고, 이를 행한 사람은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리고 통신사들이 불법 검열에 협조하는 것은 범죄를 방조하는 것이다. 사이버 검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이 같은 불법 검열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적법한 감청 즉,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형사소송법과 통신비밀보호법 등에 정한 절차에 따라 행하는 감청이 당연히 허용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SNS가 살인, 마약거래, 인신매매 등의 중죄에 사용되는 경우 범인 검거나 증거 수집을 위해 감청 또는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며 사회에 유익한 일이다. 감청 허용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은 검찰이나 수사기관이 아니라 법원이 한다. 이런 의미의 적법한 감청에는 통신사가 당연히 응해야 하고 이에 불응하는 것은 공무집행방해죄 등 범죄가 될 수 있다. 카카오톡 대표가 “감청 영장에 불응하겠다”고 한 것은 표현상의 오류가 있지만 불법 검열에는 불응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법률적으로 이렇게 간단하고 명백한 문제를 놓고 소모적 논쟁이 벌어진다는 데 있다. 여기에는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고 하자 (우리 국민에게 군사정권 시대의 인권침해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생히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검찰이 ‘실시간 모니터링’이라는 과격한 용어를 사용했고, 정치권이 ‘사이버 검열’이라는 부정적 의미의 용어를 써서 국민불안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혼란을 정리할 때가 됐다. 만약 그동안 국민이 걱정하는 불법 감청을 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행위도 범죄가 될 수 있고, 이에 대해서는 현실세계의 범죄와 똑같이 형사법적 규제가 과해진다는 사실을 일반 국민도 알아야 한다.


○ 반대 국민 사생활 함부로 들여다봐…중대범죄로만 감청 제한해야

한국 감청건수 인구 대비 美의 15배·日의 287배

세종대왕은 “지금 임금이 착하지 못하다”고 말한 사람을 풀어주며 “자신의 민원을 방치한 고을 수령 때문에 억울하다는 말인데 그런 수령을 뽑아 보낸 내 탓도 크다”고 했다. “지금의 임금이 얼마나 오래가겠느냐. 서해도에서 임금이 나올 수 있다”고 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안 되면 원망하는 말을 하기 마련이다. 나를 상하게 하고 해를 끼침이 뭐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또 “지금은 밝은 시대가 아니다”고 말한 사람에게도 “국정을 비방한 것에 대해 죄를 묻지 말아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세종은 이를 처벌하라는 신하들에게 “나에게 솔직히 말한 것을 가지고 벌을 주라 하니, 나로 하여금 아래의 사정을 듣지 못하게 하여 무지몽매함에 빠지게 하려는 것이냐”고 꾸짖었다. (세종실록, 한만수의 왕의 경영에서 재인용)

사이버 감시는 당연히 허용돼야 한다. 범죄수사를 통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무슨 목적으로, 필요한 만큼, 절차를 잘 지켜서 하느냐다.

이번에 신설된 ‘사이버명예훼손 전담팀’의 제1목표는 ‘국론분열 및 정부불신 조장’을 막겠다는 것이다. 국민이 국정에 대해 비판하고 토론하는 것에 일부 잘못이 있다손 치더라도, 제1목표를 위해 사생활을 들여다보겠다는 뜻이다.

외국에서 명예훼손 형사처벌은 권력자가 검찰을 동원해 비판자들을 탄압할 수 있는 제도로 남용되는 역기능이 너무 강해 오래전부터 인권기구들이 비형사화를 요청해왔다.

심지어는 국제언론사주협회(IPI)도 권위주의 정부들에 비형사화 촉구 서한을 보낸다. 우리는 명예훼손을 1970년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해 만들었던 긴급조치1호 유언비어유포죄 같은 걸로 이용하려 하고 있지 않나.

또 감청 건수가 한국은 2011년 인구 대비로 미국의 15배였고 일본의 287배였다. 통신사실확인자료(수사 대상이 누구와 언제 얼마나 통신했는지에 대한 자료, 통신비밀보호법이 규율함)는 기각률도 낮은 데다 2011년 한 해에만 약 3700만명에 대해 이뤄졌다. 이게 다 범죄수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했을까.

예를 들어보자.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개설한 ‘언론대화방’에 참여한 기자들의 대화 내용도 같이 ‘압수(복사)’됐다. 현재 법대로 하자면 압수수색은 범죄와 관계된 정보로 한정돼야 한다. 범죄와 무관한 기자들의 대화 내용을 빤히 보면서 복사해 갔으니 불법이다.

아예 피의자도 없는데 압수수색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경찰이 유병언을 찾겠다고 내비게이션에 ‘송치재’를 검색한 사람의 3개월치 위치정보를 압수수색했다고 한다.

그런데 위치정보 역시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에 한정해 압수수색 영장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 ‘송치재’라고 검색 한 번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위치정보 3개월치가 사건 관련성이 있다고 보고 압수한 것도 불법이다.

또 감시를 당하더라도 알면서 당하는 것과 모르면서 당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경찰이 영장이 있다고 해서 증거를 훔쳐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은 모두 감청하고 나면 기간을 정해 반드시 알려준다.

한국에서는 감청이 끝나도 수사가 완결돼 기소나 불기소 처분 결정이 내려지기까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마저도 검사장의 결정으로 영영 유예될 수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