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은퇴가 부끄러운 사회

입력 2014-10-13 01:06
은퇴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
물질중심, 이기적 사회의 단상

주우식 < 전주페이퍼 사장 w.chu@jeonjupaper.com >


요즈음은 100세 시대다. 실버세대의 건강상태가 전에 비해 매우 좋다. 내 주변에는 육칠십대에도 청년 못지않은 왕성한 에너지로 계속 현역에서 뛰는 분이 많다. 언뜻 생각하기엔 건강만 허락한다면 계속 현역처럼 일하는 것이 본인에게나 사회에 좋을 듯이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한다. 이 말은 단지 인생을 설명해 주는 것을 넘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를 잘 시사해 주고 있다. 즉 은퇴 없이 일만 하는 것은 채우기만 하고 비우지 않는 것과 같다. 자연섭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고달프고 힘든 것이다. 그래도 별 잘못 없이 그렇게 산 것은 세상의 혜택을 받은 것이며, 이를 최대한 되돌려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청년실업에 몸살을 겪고 있다. 앞으로 점점 심해질 전망이다. 이런 현실을 생각할 때 자기가 원하고 또 가능하다고 해서 은퇴를 마냥 늦추거나 안 하려고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고 사회 전체적으로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은퇴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은퇴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한다면 그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반세기 가까운 인생이 불행해지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럼 우리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에 대비한 마음의 준비를 잘하고 있는가. 한마디로 낙제 점수다. 은퇴에 대한 시각을 필자의 한국 친구와 서양 친구들 간에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차이를 보인다. 한국 친구들은 은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일 안 하면 확 늙는다’는 근거 없는 얘기가 떠돌고 은퇴 후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오해가 많다. 반면 서양 친구들은 정 반대다. 은퇴를 바라보는 시각이 밝고 오히려 기다리는 분위기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여생을 즐긴다는 당당함이 스며 있다. 은퇴를 본인이 정말 좋아하는 일, 남에게 베푸는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한다.

이런 차이는 우리의 경제적 노후 대비가 턱없이 부족한 데에도 기인한다. 그러나 밑바탕에는 물질을 정신보다 중시 여기는 물질주의적 사고,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자기중심적 사고를 반영하고 있다. 수명이 길어지고 의학이 발달함에 따라 이제 은퇴 후 인생은 은퇴 전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제2의 인생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은퇴를 반기는 마음을 가꾸어 나가야 하겠다.

주우식 < 전주페이퍼 사장 w.chu@jeonjupap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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