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경제의 만남] (45) 대출의 '역선택' 줄여주는 신용위험분석사

입력 2014-10-10 17:52

중고차시장에서 거래되는 자동차 중에는 신차 못지않게 상태가 양호한 것도 있지만, 겉만 멀쩡할 뿐 언제 고장 날지 모르는 불량차들도 있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조지 애컬로프(George Akerlof) 교수는 이런 중고차시장의 특성을 ‘레몬’에 빗대어 설명했다. 외관만 봐서는 품질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중고차를 보기에만 맛있어 보일 뿐 실제로는 쓰고 신맛을 내는 레몬에 비유한 것이다. 애컬로프 교수는 이런 중고차시장의 감춰진 속성, 즉 ‘정보의 비대칭’ 때문에 구매자들이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보의 비대칭이란 거래당사자 중 일방이 거래에 대한 정보를 상대적으로 적게 가지고 있거나 취득한 정보가 불완전한 경우를 말한다.

중고차시장에서 거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당사자는 구매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고차 판매자는 자신의 차량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만, 구매자는 차량의 수리 및 사고 여부 등 차량에 대한 정보를 속속들이 알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구매자는 사고자 하는 중고차의 성능에 대해 확신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구매자는 중고차의 가격을 양호한 상태의 중고차와 나쁜 중고차의 중간 정도로 책정하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판매자 입장에서 보면 성능이 좋은 중고차를 중간 가격에 파는 것은 손해를 보며 거래하는 것과 같다. 반면 중간 가격에 불량 중고차를 팔 수 있다면 이득을 보는 행위이므로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결국 구매자가 중간 가격을 고집하는 한 중고차시장에는 품질이 우수한 차량은 사라지고 성능이 좋지 않은 차량만 가득한 상황에서 거래가 이뤄지기 십상이다. 이 경우 구매자는 불량 차량을 제값 이상을 주고 구입하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

정보 부족으로 低품질 상품 구매

역선택이란 거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바람직하지 않은 경제주체와 거래하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구매하는 상황을 말한다. 중고차시장에서 역선택의 문제가 발생하면 소비자들은 중고차 구입 자체를 꺼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시장에서 거래되는 중고차 수가 줄고, 극단적인 경우 시장이 폐쇄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경우에 대비해 중고차를 사고자 할 때 자동차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대동해 차량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할 것을 권유한다. 또한 판매자에게 품질증명서를 요청하거나 보험개발원의 ‘카히스토리’를 통해 차량의 기록을 점검하는 것도 소비자가 역선택의 상황에 빠지는 것을 예방하는 방법 중 하나다.

한편 대출시장에서는 중고차시장과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다. 금융회사와 기업 간 대출거래를 예로 들어보자. 금융회사가 기업에 자금을 대출해주는 이유는 기업이 대출의 대가로 지급할 이자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회사가 대출해줄 경우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사항은 기업의 신용일 것이다. 기업이 대출금을 상환할 능력과 의지가 없을 경우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마저 날릴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금융회사의 경영 상태마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 기업별 신용등급 매겨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기업의 신용에 따라 이자율을 차등 적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신용이 높은 기업에는 낮은 이자율로 자금을 제공하고, 신용이 낮은 기업에는 높은 이자율을 책정하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금융회사가 기업들의 신용 상태에 대해 완전한 정보를 갖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 경우 금융회사는 중고차시장의 구매자와 마찬가지로 불특정 다수의 평균적인 신용에 기초해 이자율을 책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이자율은 신용이 좋은 기업엔 높고, 신용이 나쁜 기업에는 낮게 느껴질 것이다.

그 결과, 대출시장에도 상환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기업이나 수익률은 높지만 그만큼 실패 위험이 큰 사업을 진행 중인 기업만 남게 돼 금융회사가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역선택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중고차 구매자가 품질증명서를 요구해 역선택을 예방하듯, 금융회사도 여러 방안을 동원해 역선택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금융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고객의 정보를 활용해 산정하는 신용등급이다.

금융회사가 대출거래에 사용하는 신용등급은 과거 신용거래 내용과 현재 재무상황에 따라 고객을 1~10등급으로 구분한다. 즉, 돈을 빌리고자 하는 기업이 이전에 대출을 받아 연체 없이 성실히 상환했는지, 또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어느 정도이고 진행 중인 사업의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고려한다. 그 다음 기업마다 신용등급을 부여하고, 부여된 등급에 따라 대출 여부와 규모, 상환기간과 방법, 이자율 등을 차등 적용하는 것이다. 이런 신용등급을 기초로 해 대출거래를 시행할 경우 금융회사는 역선택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고, 공평하고 일관적인 대출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다.

신용위험 측정·관리 전문가

그렇다면 신용등급의 산정과 이를 바탕으로 한 대출거래의 시행 여부는 누구에 의해 결정될까. 우선 금융회사에서 기업의 신용등급은 ‘신용분석사’에 의해 결정된다.

신용분석사란 금융회사의 대출 관련 부서에서 기업의 회계 및 비회계자료를 분석해 기업의 신용 상황을 파악하고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금융전문가를 말한다. ‘여신심사역’도 기업에 대한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 중 하나다. 여신심사역은 국내외 경제상황과 진행 중인 기업의 사업성을 분석해 대출 관련 심사업무를 담당한다. 마지막으로 금융회사에서 기업의 대출에 관여하는 사람으로 ‘신용위험분석사’를 들 수 있다.

신용위험분석사는 금융회사나 신용평가기관에서 개인과 기업의 신용상태를 조사·평가하고 신용위험을 측정·관리하는 전문가를 말한다. 이상에서 말한 전문가들은 금융회사에서 기업의 신용상태와 재무상황을 분석해 신용등급을 산정하는 역할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등급 산정에 필요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업무까지도 수행하고 있다. 이런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금융연수원에서 시행하는 국가공인 민간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자격증은 신용분석사, 여신심사역, 신용위험분석사 순으로 취득이 가능하다. 즉, 신용분석사를 취득한 자에 한해 여신심사역 자격증 취득이 가능하고, 신용위험분석사의 경우는 신용분석사와 여신심사역 자격을 취득한 자에 한해 시험 과목 중 일부를 면제한다. 한편 신용위험분석사는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소정의 교육을 이수하고 3년 이상의 실무경력을 갖춰야만 완전히 자격 취득이 가능해 대출 관련 분야의 최고 난이도 자격증으로 평가받고 있다.

● 역선택

거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바람직하지 않은 상대방과 거래하는 경우를 말한다. 은행 대출의 경우 대출자의 정보가 부족해 대출금의 상환 여부를 파악하기 힘들면 은행은 평균 수준의 금리를 적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우량고객은 이자가 높아 대출을 꺼리게 돼 신용이 낮은 고객들과만 거래하게 되는 역선택에 빠질 수 있다.

● 신용등급

개인이나 기업의 금융거래 기록, 재무상황 및 신상정보 등을 활용해 산정한 등을 활용해 산정한 등급을 말한다. 신용등급은 금융회사가 고객과 금융거래를 시행할 때 판단의 기준이 된다. 신용등급은 통상 10개 등급으로 나뉘어 부여되며, 금융회사나 신용평가기관 등 신용정보를 집적하는 기관에서 산정한다.

정원식 <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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