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차이나포비아

입력 2014-10-10 00:45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올해 3분기까지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1~9월 FDI(신고 기준)가 전년 동기 대비 37.9% 증가한 148억2000만달러였다. 그러나 미묘한 시각차가 느껴지는 대목도 있다. 바로 중국의 대한(對韓) 투자다. 10억3000만달러로 무려 230.4%나 급증했다. 중화권으로 치면 30억1000만달러로 89.8% 늘었다. 일각에선 쇄도하는 중국 투자에 경계감을 숨기지 않는다.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등의 투자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다.

엄습하는 ‘차이나 포비아’의 근저엔 중국이 한국을 곧 따라잡을지 모른다는 추격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툭하면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1~2년밖에 안 남았다고 주장하는 조사들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추격논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중국 투자를 거부한다고, 또 기술을 안 준다고 그 격차가 유지된다는 법도 없는데 말이다.

추격논리, 오히려 '독'될 수도

자고 나면 국제적 인수합병으로 기술이 통째로 왔다 갔다 하는 세상이다. 차라리 그럴 시간이 있으면 우리가 원하는 분야에 중국 투자를 전략적으로 유인할 방도를 연구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나.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의 부상도 마찬가지다. 온통 삼성전자가 고전한다는 얘기뿐이다. 어차피 삼성전자가 알아서 할 일인데 웬 훈수꾼이 이리도 많은지. 이 역시 어두운 면만 있는 게 아니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 덕에 물량이 달린다는 국내 소재부품 업체도 적지 않다. 애플, 삼성전자, 그리고 중국이라는 경쟁구도 확장이 기회를 가져다 준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키우려 했던 소재부품산업의 무역흑자가 올해 1000억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알리바바를 두고 중국의 세계 정보기술(IT) 대공습 운운하는 것도 지나치다. ‘인사이드 차이나’와 ‘아웃사이드 차이나’는 사업 환경부터 다르다. 인사이드 차이나에서 법과 제도의 보호 속에 성장한 알리바바를 단지 해외 상장으로 글로벌 업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만약 알리바바 등 중국 IT가 아웃사이드 차이나로 비즈니스를 확장하겠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그럴수록 중국이 국내 시장 보호를 고수하기가 점점 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재산권 분쟁 등 글로벌 스탠더드도 수용해야 한다. 이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중국을 내수시장화하겠다는 우리 전략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새로운 카드 던질 기회다

돌이켜 보면 한국 제조업은 중국 덕에 ‘탈산업화’가 아니라 ‘제조업 르네상스’를 구가할 수 있었다. 그러던 한국 제조업이 중국 부상으로 기로에 선 건 분명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국내 산업의 운명은 우리 손에 달렸다. 유럽에서 덩치 큰 독일 옆에 있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도 다 자신만의 비교우위를 갖고 있지 않나. 더구나 우리가 강점을 가진 IT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산업 혁신에 성공하면 새로운 비교우위를 창출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물론 산업 패권의 역사적 흐름으로 보면 우리가 모든 걸 다 잘할 수는 없다. 중국만 의식하다가는 자칫 미래를 잃을지 모른다. 차분하게 시간을 벌며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신산업 추격에 불을 붙여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카드를 던질 수 있다. 이제부터야말로 지력(知力) 싸움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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