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자영업, 탈출구를 찾아라] (9) 성공스토리 2題…바닥으로 내려가라

입력 2014-10-02 21:18
수정 2014-10-03 03:48
[ 고은이 / 정영효 기자 ] 한국 자영업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는 영세성이다. 단순히 규모가 작다는 얘기만은 아니다. 영세성의 폐해는 주먹구구식 입지 선정과 자기 편의적 영업패턴이 협소한 공간, 비전문적 인력과 결합할 때 극에 달한다. 이런 식이면 시쳇말로 한 방에 날아간다. 하지만 작지만 강한 가게는 전국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다. 크기는 생존의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없다. 관건은 차별화다. 그 요체는 학습능력과 끊임없는 혁신이다.


月매출 6천만원 동네빵집 사장, 부산까지 찾아가 수습으로 일해

천안 ‘시바앙베이커리’ 유상모 사장
창업 9년 된 베테랑이지만
‘전국구 빵집’ 도약 위해 새 메뉴 만들어 차별화 주력

전국을 돌아다니는 동네 빵집 사장

지난달 26일 충남 천안 신부동의 시바앙베이커리에 들어서자 향긋한 빵 냄새가 먼저 코끝을 스쳤다. 따뜻한 느낌의 원목 진열대에 맛깔스러운 색의 빵들이 삼삼오오 진열돼있었다. 유상모 사장(45)은 “식감을 높이기 위해 조명과 진열, 고객의 손이 닿는 위치까지 신경을 썼다”며 “빵을 넉넉하게 진열하기 위해 테이블도 과감히 없앴다”고 말했다.

시바앙베이커리는 올해로 9년 된 동네 빵집이다. 하루 평균 매출은 180만원. 12평짜리 지방의 작은 가게치고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월 매출이 6000만원을 넘기는 때도 있다. 창업 초기와 비교하면 6배가량 불어난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잘 된 것은 아니었다. 유 사장은 개업 초기 비용 절감을 위해 저렴한 냉동 반죽을 사다 썼다. 그럭저럭 장사도 되는 편이었다.

하지만 맞은 편에 롯데마트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손님이 한 번에 확 줄었다.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대형마트가 값싼 빵들을 대량으로 내다 파니 방법이 없었어요.” 그는 냉동 반죽을 포기하고 전부 매장에서 반죽해 구워내기로 했다. 대신 인기 없는 빵 20가지는 아예 없앴다.

가격을 올리더라도 철저하게 품질로 차별화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유 사장의 선택은 옳았다. 가격이 프랜차이즈 빵집보다 20~30%가량 비쌌지만 손님들은 더 밀려들었다. 이후 블로그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고 전국 각지에서 베이커리를 찾아오는 손님이 늘어나면서 가게 매출은 연평균 20%씩 늘었다.

유 사장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전국구 빵집’으로 도약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것이 많다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전국의 유명 빵집을 무작정 돌기 시작했다. 여러 빵집의 대표 제품과 경영 노하우 등을 접목하기 위해서였다. 최근엔 전국 빵집들의 도넛들을 보고 돌아왔다. 다음달 출시 목표인 도넛 패키지를 위해서다.

유 사장은 지난 3월에도 부산의 이진환제과점에서 열흘간 수습으로 일했다. 이곳에서 익힌 생우유 페이스트리 제조법으로 지난 5월 페이스트리 8종 세트를 내놨다. 손님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단골손님들이 처음엔 새 메뉴에 좀 낯설어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가게를 찾아옵니다.”

유 사장은 요즘 시바앙의 대표빵을 고급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부드러운 호두빵인 ‘호두롱’이 그것이다. 호두롱 전용 선물 패키지를 준비해 소비자를 사로잡는다는 복안이다. “동네 빵집이라도 생각을 많이 하고 적재적소에 투자만 잘한다면 얼마든지 대형 빵집을 이길 수 있습니다. 작은 변화에 망설이지 않았던 것이 9년간 가게를 키워온 비결입니다.”


요리 자격증 3개 있지만 일본行…꼬치꿰기·회뜨기부터 다시 익혀

서울 충정로 ‘미치코’ 이승렬 사장
하루 13시간 청소하며 버텨…6개월 지나자 조리법 알려줘
“일이 손에 익어야 성공하죠”

창업 전 일본에서 청소만 6개월

“한식 중식 일식 요리자격증을 갖고 있지만 꼬치 꿰는 법, 프라이팬 다루는 법, 회 뜨는 법 하나하나를 밑바닥부터 다시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 4월 서울 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 근처에 문을 연 미치코식당은 평일 저녁이면 줄을 서야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영업시작 6시간 전부터 사장이 직접 꿰어서 파는 수제 꼬치구이 맛이 입소문을 타면서다. 이승렬 사장(35)은 이번이 두 번째 창업이다. 신촌 연세대 앞 골목에서 ‘와글와글’이란 바를 10년간 운영한 경험이 있다. 중앙대 조소과를 나온 그의 인생은 신촌의 유명 바였던 ‘록앤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바뀌었다.

바만 차리면 손님이 몰리던 때라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실제로 가게를 내느라 가족들로부터 빌린 돈을 10개월 만에 갚을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그렇게 가게를 꾸려간 지 10년 만인 2013년 어느 날 그는 신촌을 뜨기로 결심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금~토요일 피크타임(밤 9시~다음날 새벽 1시)이면 170만원을 찍던 매출이 토요일 하루 동안 80만원까지 떨어진 날이었다.

새 가게 터를 찾으려고 1년 동안 서대문 사거리부터 중림동까지 샅샅이 뒤졌다. 일본식 수제 꼬치구이란 사업 아이템은 그렇게 나왔다. 직장인들이 많은 충정로역 주변에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가 중림동 한 곳뿐인 걸 보고 ‘이거다’ 싶었다.

그런데도 무턱대고 일본행 비행기에 오른 건 ‘일이 손에 익기 전까진 가게를 열지 않는다’는 바 운영 경험으로 체득한 지론 때문이었다. 하루 영업을 시작하면 손님맞이부터 조리, 서빙까지 모든 서비스가 물 흐르듯 이뤄져야지, ‘가게를 하면서 일을 배우지’ 하는 태도로는 반드시 망한다는 것이다. 일본 지인이 소개해준 이자카야 두 곳에 우여곡절 끝에 취직했지만 일본어를 못했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성실함밖에 없었다. 출근시간은 아침 9시였지만 8시에 나가서 매일 동네 골목을 쓸었다. 하루 13시간씩 일하는 고된 일상이 이어졌고 즐기던 술도 딱 끊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닦고 쓸었습니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들이지만 이 사장의 정성에 맘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반년쯤 지났을 때 청소만 시키던 이자카야 사장과 고참 요리사들이 간장소스 제조법 등 조리비법을 하나씩 알려주기 시작했다. 프라이팬 다루는 법을 배울 땐 일반 화로보다 화력이 훨씬 센 이자카야 화로에 얼굴이 시커멓게 타기도 했다. 미치코식당은 그렇게 탄생했다.

“손님들이 즐겁게 드시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아내를 한국에 홀로 남겨두고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가 고생한 보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은이/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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