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슈퍼 달러' 행진 - 비상걸린 신흥국 금융시장
强달러 후폭풍
달러 캐리 트레이드 '흔들'…금리차 수익 매력 사라져
채권시장은 벌써 경고등
채권지수 2개월만에 6%↓…외자 급속 이탈땐 큰 혼란
[ 김은정 기자 ] 지칠 줄 모르는 미국 달러화 강세 행진이 신흥국 금융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달러 강세가 이어지자 미국의 초저금리 기조와 양적 완화 정책으로 신흥국 금융시장에 몰렸던 글로벌 투자자금이 대거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상대적으로 취약한 신흥국 금융시장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강달러에 신흥국 통화 가치 폭락
미국 달러화 대비 주요 신흥국 통화 가치를 보여주는 JP모간신흥시장통화지수는 지난 29일(현지시간) 83.6으로 떨어졌다. 2003년 이후 11년 만에 최저치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도 낮은 수치다.
반면 유로·엔·파운드 등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의 평균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최근 11주 연속 오름세다. 앨런 러스킨 도이체방크 연구원은 “1973년 달러인덱스가 도입된 이후 최장 기간 달러 강세가 이어진 것은 아시아 외환위기가 강타했던 1997년의 9주 연속이었는데 올해 그 기록을 깼다”고 말했다.
달러 랠리는 미국이 상대적으로 강한 경제 회복세를 보이면서 달러화에 대한 투자 매력이 커진 영향이 크다. 이달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 종료로 달러 공급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달러화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슈퍼 달러’ 현상에 신흥국 통화 가치는 줄줄이 하락세다. 최근 두 달 동안 러시아 루블화는 11.1% 하락했고, 브라질 헤알화는 9.1%, 터키 리라화는 8.3% 떨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달러화 가치가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신흥국의 캐리 트레이드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캐리 트레이드 자금을 회수하면서 신흥국 금융시장의 위험이 재부각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캐리 트레이드란 저금리로 조달한 자금을 다른 국가의 고수익 자산에 투자해 이익을 내는 투자전략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저금리 기조가 확산되면서 투자자들이 많이 활용했다. 미국 달러화는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신흥국 투자를 위한 주요 조달 통화로 사용됐다.
하지만 달러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이 같은 투자전략이 빛을 잃게 됐다. 투자자들은 신흥국 통화 약세로 인해 외환시장에서 발생하는 거래 손실이 금리 차로 인한 수익을 넘어선다고 판단해 캐리 트레이드를 청산하고 있다. 루이스 코스타 씨티은행 외환 투자전략가는 “오랫동안 시장에 유동성이 넘치고 저금리가 유지돼 왔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며 “캐리 트레이드 전략도 마침내 무너졌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자금 이탈 가시화
신흥국 채권시장에서는 이미 글로벌 투자자금 이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JP모간이 발표하는 신흥국 채권지수 GBI신흥시장현지통화채권지수는 지난 26일 연고점이었던 7월 말 대비 6% 가까이 떨어졌다. 평균 금리는 올해 최저 수준이었던 7월 말 연 6.45%에서 연 6.69%로 상승했다. 채권 가격은 그만큼 떨어졌다는 얘기다.
신흥국 채권 발행 규모도 줄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 8월 신흥국 채권 발행액은 220억달러(약 23조1880억원)에 그쳤다. 작년 월 평균 발행액 620억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FT는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신흥국 자산을 팔고 미국 달러화 매입으로 돌아선다면 신흥국 금융시장은 빠르게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동안 신흥국들의 경기회복엔 해외 투자자금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글로벌 뭉칫돈으로 경상수지 적자 등을 메웠다. 대규모 해외 투자자금이 이탈하면 환율과 물가가 급등하고 외환보유액이 급감할 수 있다. 주식시장 폭락 등 후폭풍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신흥국 채권에 투자한 해외 투자자금은 약 2조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멕시코 경제 규모를 합한 것보다 크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신흥국 채권시장에서 해외 투자자들의 채권 보유 비중이 2007년 8%에서 2012년 17%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는 해외 투자자들이 국채의 45% 이상을 갖고 있다. 폴란드, 헝가리, 멕시코, 인도네시아 역시 국채의 35% 이상을 해외 투자자들이 보유 중이다. 알베르토 갈로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시장 전략가는 “당분간 신흥국 금융시장은 투자자들의 심리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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