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 제재에 보복법안 추진…주가 급락 등 금융시장 요동
EU-우크라 FTA 재협상 요구 "협약 발효 땐 즉각 보복"
[ 김순신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의 경제제재에 맞서 ‘자국 내 외국인 자산몰수’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달 들어 서방국가들이 러시아 방위산업체의 유럽 자본시장 접근을 차단하고 기업인의 자산을 몰수하는 등 제재 강도를 높이자 ‘제재에는 제재’라는 전략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친러시아 반군 간 휴전협정 이후 진정세를 보여왔던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험이 다시 부각되면서 국제 증시가 요동쳤다.
○‘보복의 칼’ 뽑은 러시아
블룸버그통신은 25일(현지시간) 러시아 하원 의회가 외국인 자산 몰수를 위한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의회 홈페이지에는 발의된 법안과 관련, “외국인이 보유한 자국 내 부동산 등 자산을 몰수할 수 있고, 해외에서 ‘불법적인 조치’로 고통받는 러시아 국민에게 보상할 수 있도록 한다”고 돼 있다. 블룸버그는 “외국인의 자산을 빼앗아 외국에서 자산을 몰수당한 개인에게 보상해주겠다는 것”이라며 “최근 이탈리아가 푸틴의 최측근인 아르카디 로텐베르그의 자산을 몰수한 것에 대한 보복조치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탈리아 사법당국은 지난 22일 로텐베르그의 회사가 소유한 서부 사르데냐섬 부동산 등 3000만유로(약 400억원)에 달하는 자산을 압류조치했다. 로텐베르그는 ‘푸틴의 친구’로 분류되는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제재 대상에 올라 있다. 미국 경제주간지 포브스는 “러시아는 석유회사 유코스 등을 국유화한 경험이 있다”며 “이번 제재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푸틴 대통령은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와 EU 간 자유무역협정(FTA)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어 ‘재협상’을 요구했다. 푸틴은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크라이나 의회와 유럽 의회가 최근 비준한 협약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며 “만약 우크라이나가 협약의 단 한 조항이라도 발효시키려 한다면 보복하겠다”고 위협했다. 우크라이나는 16일 EU와 FTA를 위한 기본 조건에 합의하고 15개월 후 FTA를 발효한다는 협정을 맺었다. 카렐 드 휴흐트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15개월의 유예기간이 우리에겐 숨고르기를 위한 휴식시간인 데 반해 러시아엔 협정 무효화를 위한 시간”이라고 비판했다.
○벌벌 떠는 국제 금융시장
러시아에 있는 외국인 자산의 안정성이 흔들리면서 미국과 유럽 증시는 급락했다.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264.26포인트(1.54%) 하락한 16945.80에 마감했다. 하루 낙폭으로는 7월31일 이후 두 달여 만에 가장 큰 수준이다. S&P500과 나스닥지수도 2% 가까이 빠졌다. 독일과 프랑스 증시는 1% 넘게 하락했다.
올레그 코즈민 르네상스캐피털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이 심화되면 러시아의 제재가 자산 몰수를 넘어 외교 영역까지 확대될 것”이라며 “양측의 장기간 대립은 세계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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