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비행이 대형 참사로 커지는 법
아이에게 남을 존중토록 가르치고
제대로 된 부모되는 교육 강화해야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 joonh@snu.ac.kr >
사회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총량과 정도를 객관적인 지표로 만들어 폭력지수를 잰다면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또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폭력지수가 높게 나올 것 같다. 최근 모든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군폭력 사건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폭력, 성폭력, 사이버폭력 등 이미 오래전부터 고질화된 악명 높은 폭력사회의 병변들이 즐비하다. 가히 폭력의 암흑시대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다.
폭력 근절은 쉽지 않다. 학교폭력만 해도 정말 어려운 문제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란 긴 이름의 법률이 학교폭력을 방지한다며 마련한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들은 생활기록부 등재에 따른 대학입학 시의 불이익 우려 때문에 학부모들에게 매우 강력한 효과를 낸다. 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사과조차도 생활기록부에 남겨서는 안 된다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부모들이 속출하는 이유다. 행정심판에서 아직 젖살도 빠지지 않은 어린아이가 어머니 손을 잡고 출석해 가해자 자리에 서는 광경은 정말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아이들에게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든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하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애들 사이인데 뭘 그래’ 하는 이 작은 안이함이 자라고 전이돼 총기난사,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먼 훗날 얘기도 아니다. 당장 자살이나 정신질환, 상해 등 여러 가지 심각한 결과를 낳고 있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존중하고 그 어떤 이유로도 함부로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을 확산시키는 일이다. 고의가 아니다, 그저 장난이었다, 그런 결과가 생길 줄 몰랐다는 변명으로 동무나 동료, 후임이나 하급자들을 괴롭히고 피해를 주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미 폭력의 터널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다. 곳곳에서 폭력의 씨앗과 줄기, 갈 때까지 다 간 폭력의 암덩어리들이 준동하는데, 국가 차원에서 일관성 있게 폭력을 퇴치하겠다는 정책의지가 필요하다. 정책의 시그널 효과도 중요하다. 당분간은 학교폭력이 사라지거나 줄기는 어려울지라도 어느 정도 추세를 잡을 때까지는 일관성 있게 계속 신호를 보내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가와 사회 못지않게 부모와 가족의 책임이 크다. 괜히 다른 아이를 괴롭히며 노는 아이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일본의 부모들처럼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고 가르치는 부모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공공장소에서 소리 지르며 나대는 아이에게 주의를 줄라치면 누가 감히 내 아이를 건드리느냐, 어디 한 번 해볼 테냐 눈을 부릅뜨는 부모들이 흔하다. 좀 못난 친구든 소심한 친구든, 종종 어떤 이유에서 폐를 끼쳤든, 그 누구든 존중하고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부모가 아주 일찍부터 그것도 귀가 닳도록 가르쳐야 한다. 아이를 양순하고 소심하게 키우라는 얘기가 아니다. 권리의식이 투철하고 남의 불행을 못 본 체하지 않으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소신을 키워주되 다른 사람의 권리도 존중하는 정의감을 심어줘야 한다.
모든 부모들은 이미 사회적 교사들이다. 따로 예산이나 시설이 들지는 않지만 분명 우리가 사는 사회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 줄 희망인자들이다. 부모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부모에게 자식 잘못 키웠다고 질타하기에 앞서 제대로 된 부모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줘야 한다. 평생교육이든 사회교육이든 부모가 제 역할을 다하도록 해주는 데 정책적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가정이 바로 서면 사회문제의 아주 많은 부분을 해결하거나 치유할 수 있다. 이미 학교폭력예방대책법같이 학교장에게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등을 위한 교직원 및 학부모에 대한 교육을 학기별로 1회 이상 실시하도록 의무화한 사례도 있다. 실효성 점검도 해야겠지만, 이 아이디어를 좀 더 강력하게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 joonh@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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