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의장, 정기국회 의사일정 직권 결정
與 "국회 공전 더이상 방치 못해…단호히 처리"
내홍 휩싸인 野 "협의 없는 법안 상정은 위법"
[ 이태훈 기자 ]
정의화 국회의장이 16일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직권 결정하는 ‘충격 요법’을 썼지만, 조속한 시일 내에 국회가 정상화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정 의장의 결정에 반대하고 있어 새누리당만 참여하는 ‘반쪽 국회’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명 국회 선진화법이라 불리는 현행 국회법에 따라 야당의 참여 없이는 각 상임위원회에서 법안을 처리할 수 없다.
○정 의장 ‘결단’ 배경
그동안 새누리당은 국회의장이 직권으로라도 의사일정을 결정해야 한다고 압박했으나, 정 의장은 야당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 처리와 국회 의사일정을 연계하고 있는 새정치연합이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까지 터지며 내홍에 휩싸이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는 게 정 의장 측 설명이다.
이수원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은 “의장은 어려운 대내외적 상황 속에서 산적한 민생 현안을 눈앞에 두고 국회를 계속 공전시키는 것은 국민의 뜻을 외면하는 것으로 보아 의사일정을 최종 결심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본회의 소집을 계속 늦추면 헌법재판소에 정 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겠다”며 정 의장을 압박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91개 법안 처리 가능할까
현재 본회의에 계류 중인 법안은 91개다. 이들 법안은 각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기 때문에 본회의에 상정한 뒤 재적의원 과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다. 새누리당의 의석 수는 158석으로 과반(151석)이다. 하지만 이들 법안을 표결에 부치려면 상정을 먼저 해야 하는데, 의장이 여야 원내대표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 직권으로 법안을 상정할 수 있는지를 두고 여야의 주장이 엇갈린다.
김영근 새정치연합 대변인은 “야당의 협의 없이 법안을 상정한다면 ‘부의’와 ‘상정’을 구분하고 있는 국회법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선진화법은 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사변 등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본회의를 열더라도 야당 합의 없이는 91개 법안을 상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91개 법안은 각 상임위와 법사위를 통과할 때 이미 여야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본회의에 상정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형두 국회 대변인은 26일 본회의에서 91개 법안 처리를 시도할 것이냐는 질문에 “따로 의장이 (그에 관한 입장을) 결정해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91건의 법안부터 시작해서 처리할 생각”이라며 “다소 어렵다 하더라도 더 이상 국회를 공전으로 둘 수는 없어 단호한 입장에서 처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야당 언제 참여할까
새정치연합은 세월호 특별법을 우선적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의사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각 상임위에 계류 중인 법안들은 야당 협조 없이 처리가 불가능하다.
교섭단체 대표연설이나 국정감사, 대정부 질문 등도 모두 김빠진 ‘여당만의 잔치’에 그칠 공산이 크며, 당연히 부실 논란도 뒤따를 전망이다. 의사일정이 아예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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