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
辛회장, 중국 국빈 만찬때 쇼크
"보르도産인줄 알았는데 중국産"
대규모 와이너리 조성 추진
해외 유명 포도재배 전문가 초빙
국내 토양에 적합한 품종 개발
[ 강진규 기자 ]
올 들어 ‘클라우드’로 맥주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롯데그룹이 이번에는 와인사업 육성에 본격 나섰다. 롯데의 주류 계열사인 롯데주류는 100만㎡(30만여평) 규모의 국내 최대 와이너리를 조성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롯데의 와인사업 강화는 신동빈 회장의 강한 의지에 따른 것이다. 신 회장이 와인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지난해 6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을 때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신 회장은 당시 베이징시 인민대회당 금색대청에서 열린 만찬에 나온 와인을 마시고는 맛에 감동해 라벨을 확인하다 깜짝 놀랐다. ‘프랑스 보르도산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중국산 와인이었기 때문이다. 만찬에 제공된 와인은 중국 와인 회사 장위(張裕)의 레드와인 1992년산과 화이트와인 2008년산이었다.
신 회장은 이 자리에서 ‘중국에서도 보르도산급의 좋은 와인을 만드는데 우리도 국빈 만찬 때 내놓을 수 있는 국산 와인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신 회장의 이런 결심은 지난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만찬을 보고 더욱 굳어졌다. 당시 청와대 만찬에서는 스페인산 ‘핑구스’와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르로이’ 등이 나왔다.
롯데의 와인사업 육성을 위한 첫 과제는 대규모 와이너리를 조성하는 것이다. 롯데 고위 관계자는 “와인의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서는 최소 100만㎡의 와이너리가 필요하다”며 “경북 영천 등 주요 포도산지의 포도재배 환경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북 영천시는 5000여 포도농가가 2269만㎡의 포도밭에서 연간 4만3000t의 포도를 생산하는 전국 최대 포도산지다. 하지만 대부분은 식용 포도다. 양조용 포도 재배량은 극히 미미하다.
롯데는 호주 와인회사 ‘피터르만’에 포도 재배와 관련된 컨설팅을 의뢰한 상태다. 프랑스 보르도와 미국 나파밸리 등 유명 와이너리의 전문가도 초청할 계획이다. 국내 토양에서 재배하기에 적합한 양조용 포도 품종을 찾는 것이 1차 목표다.
롯데는 2009년 두산으로부터 주류사업을 인수하면서 경북 경산시에 있는 와인 ‘마주앙’ 제조 설비도 함께 넘겨받았다. 마주앙은 ‘마주앉아 즐긴다’는 뜻으로 1977년 출시 후 줄곧 한국천주교의 미사주로 사용돼왔다. 생산물량은 연간 15만병 규모다.
하지만 품질 측면에서는 아직 갈길이 멀다는 평을 듣고 있다. 마주앙 화이트와인은 경북 의성군에서 계약 재배한 양조용 포도를 사용해 그나마 맛을 내고 있지만 레드와인은 영천의 식용 포도로 만들어 제대로 된 맛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한국에 맞는 레드와인용 포도 품종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식용으로 재배되는 포도는 알이 굵어 먹기 좋지만 양조용 포도는 알이 작은 대신 당도가 높다. 와인은 포도에 있는 당 성분을 알코올로 바꾸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당도가 높은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야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롯데는 마주앙 레드와인의 경우 현재 칠레산 원액을 80%가량 혼입해 만들고 있다.
롯데는 국산 와인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국내 농가 소득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양조용 포도 재배 농가를 육성하고 와인 제조 공장에 인력을 채용하면 농촌 경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품격 국산 와인을 생산하는 데 성공하면 지난해 1700억원 규모인 와인 수입을 대체하는 효과도 기대된다”고 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