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트라우마' 되살아나나…경고등 켜진 수출株 대안책은

입력 2014-09-03 14:35
수정 2014-09-03 14:40
[ 권민경 기자 ]

일본의 엔화 약세 현상이 재점화하면서 국내 증시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엔·달러 환율이 박스권 상단인 105엔을 돌파하는 등 한동안 주춤했던 엔화 약세가 고개를 들자 수출주 실적 모멘텀에 경고등이 커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그동안 정부 정책 발표에 힘입어 상승세를 이어오던 국내 증시가 엔화 약세에 발목 잡힐 수 있다는 '비관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 엔·달러 환율 105엔 돌파…원·엔 환율 2008년 이후 최저

3일 오후 1시28분 현재 엔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0.86엔(0.83%) 오른 105.09원을 나타냈다. 올 들어 100엔 초반에서 움직이던 원엔 환율은 지난달 일본의 공적연금 자산배분 비중변화 결정과 미국 금리인상 신호에 따라 약세로 방향을 틀었다.

원·엔 환율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을 경신하며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 당 996.34원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장중 970원대로 떨어진 원엔 환율은 저점을 계속 낮춰 현재 2008년 8월 25일(964.23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이같은 엔화 약세가 국내 증시에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날 한국과 일본 증시에서 상반된 흐름이 전개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분석.

도쿄 주식시장에서 닛케이225는 전 거래일보다 1.24% 상승한 반면 코스피는 0.97% 하락했다. 특히 일본에선 IT와 경기소비재 등 핵심 수출주가 시장 상승을 이끈데 반해 한국에선 삼성전자를 비롯해 현대차, 현대모비스, 코웨이 등이 2% 이상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날 역시 삼성전자, 현대차, SK하이닉스 등 대표 수출주 주가는 줄줄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국과 일본 증시의 상반된 상황은 엔화 약세가 재개됐기 때문"이라며 "최근 엔화 약세 전환은 일본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외변수 핵심으로는 미국의 조기금리 인상 논의와 이에 따른 달러화 강세 전환을 꼽을 수 있다"며 "대내적으로는 추가 경기부양책에 대한 절실함이 엔화 약세 전환을 자극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12년 4분기 이후 올해 1분기까지 6분기 연속 호조세를 보이던 일본경제는 2분기 들어 주춤한 모습이다. 소비세율 인상은 소비둔화로 이어졌고 연이은 투자와 생산 부진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부진을 가져왔다.

박성훈 우리투자증구원은 "최근 발표된 일본 경제지표 부진으로 추가적인 부양책 시행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문제는 이에 따라 엔화 약세가 심화되면서 국내 수출기업들의 실적 전망을 어둡게 하는데 있다"고 진단했다.

◆ 日 추가 부양책으로 엔저 심화할까…증시 영향 얼마나

엔화약세가 추세적으로 계속될 지에 대해서는 투자업계 의견이 엇갈린다. 일본 정부가 경기부침을 해결하기 위해 추가 부양책을 꺼내들어 엔화 약세를 부채질할 것이란 시각이 있는 반면, 높아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감안할 때 단시일 내 부양책을 더 쓰기엔 어렵단 의견도 있다.

김 연구원은 "글로벌 투자자들은 올해 엔달러 환율이 105엔 사이를 오가다 내년엔 110엔까지 갈 수 있다고 본다"며 "일본의 추가 부양책과 함께 미국 통화정책 변화 여부도 엔화 약세를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엔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6월 경상수지가 9000억 엔 적
자를 기록하는 등 경기 회복 조짐이 보이지 않아 추가 부양책에 대한 요구가 있다"면서도 "소비세율 인상 이후 높아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볼 때 추가 부양책을 시행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엔화의 추가 약세와 상관없이 이미 높아진 레벨이 국내 수출주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는 투자업계 공통된 의견이다.

류주형 신한금융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사례를 보면 엔달러 환율이 103엔 이상일 경우 엔화 약세 피해 업종으로 인식되는 자동차, 전기전자, IT하드웨어 등 수출주 수익률이 부진했음을 알 수 있다"며 "현재 높아진 엔화 레벨은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투자업계는 엔화 약세가 소나기로 그치던 장맛비로 가던 일단 '우산'은 쓰고 가야 한다는 시각이다. 엔화 약세에 따른 민감도가 큰 수출주보다는 내수주가 합당한 선택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연구원은 "레저, 관광, 은행, 미디어, 유통 등 내수주는 엔저 트라우마 그늘이 드리워진 시장에서 의미있는 완충지대로 기능해왔다"며 "정부정책 변화의 수혜가 예상되는 건설과 통신 등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꼽았다.

이 연구원은 "은행, 증권, 건설 등은 하반기 이익 모멘텀이 강한데다 정책 수혜주라는 점에서 믿고 비중을 늘려가도 좋은 업종"이라고 제시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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