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대한민국
공공·금속·의료노조, 野 장외투쟁에 편승…갈등 확산 '역주행'
나라가 멍들건 말건…정치권 이어 노동계까지 국가재난 '악용'
美·日·유럽 '경제 올인' 하는데 한국만 '소용돌이'
갈등 해결 나서야 할 野는 길거리에서 피켓 시위
새정치민주연합이 거리로 뛰쳐나가 ‘정치 파업’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공공노조와 민주노총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끌어들여 또 다른 정치 파업에 나섰다.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커녕 오히려 집단이기주의를 관철하려는 방편으로 악용하려는 움직임이다. 여야 간 극한 대립에 ‘정치 노조’들의 무분별한 파업까지 가세하면서 가뜩이나 힘겨운 경제에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고 있다.
27일 노동계에 따르면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서울대병원 노조)는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집회를 연다. 민노총은 현대·기아자동차 등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과 서울대병원 노조 외에도 수도권 조합원들에게 연차 사용 및 조퇴 지침을 내린 상태다. 보건의료노조도 28일 파업에 들어가면서 세종시와 부산대병원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들 노조의 파업은 장외 투쟁에 들어간 야당을 측면 지원하면서 ‘의료민영화 저지’ ‘공공기관 정상화 반대’ ‘상여금 통상임금화’ 등으로 흩어져 있는 노동계의 투쟁동력을 세월호로 총집결시키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김정식 한국경제학회장(연세대 교수)은 “노동계가 국회 실종의 틈을 비집고 정치적 갈등을 확전시키는 상황이 심히 우려스럽다”며 “사회적 갈등이 커지면 소비와 투자를 늘려 경기를 살리려는 정책적 노력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8월 소비자심리지수가 소폭 반등하긴 했지만 지역 체감경기는 여전히 바닥권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역경제동향에 따르면 지역 소상공인의 절반 이상은 세월호 참사 여파가 오는 10월 이후까지 갈 것으로 보고 있다.
○증폭되는 노·정 갈등
노동계는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양대 노총 공공기관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27일 오후 7시 서울역 광장에서 총파업 진군 결의대회를 열었다. 공대위는 지난달 7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보건의료노조, 한국노총 공공노련·금융노조·공공연맹 등 5개 연맹 대표자회의를 열고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추진 강행에 맞서 9월3일 총파업 돌입을 선언한 바 있다.
원격의료 허용 등 정부의 의료서비스 완화 정책을 ‘의료 민영화’로 몰아붙이고 있는 서울대병원 노조는 이미 이날 새벽 5시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는 “박근혜 정부는 병원을 돈벌이로 만들고,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킬 의료 민영화 정책을 철회하라는 국민적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의사협회도 9월부터 실시되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대정부 투쟁 등 강경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이날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수천명이 참가한 가운데 총파업 진군대회를 열었다. 은행과 금융공기업 등 10만여명의 근로자로 구성된 금융노조는 다음달 3일 14년 만의 총파업을 결의한 상태다. 지난 26일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총파업 찬반투표에서 투표율 86%, 찬성률 90%로 총파업 돌입안이 가결된 것. 올해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의 산별교섭이 결렬된 게 총파업의 계기다. 금융노조는 △임금 6.1% 인상 △정년 60세 연장 △통상임금 범위 확대 등을 요구했으나 사용자 측은 금융산업 수익성 악화 등을 이유로 거부했다.
○갈등 비용 누가 감당하나
이처럼 ‘강(强) 대 강’ ‘힘 대 힘’으로 맞붙는 갈등양상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파업 명분도 정치적 구호로 바뀌면서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경제적·사회적 비용도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이 일사불란하게 경제회생에 진력하는 것과 달리 유독 한국만 정치적 혼란에 빠져 경제의 앞날을 그르칠 수 있다는 우려감이 팽배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이틀째 장외투쟁을 벌이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야·유가족 3자 협의체’ 수용을 새누리당에 압박했다. 정부와 여당이 촉구하는 ‘민생법안 분리처리론’에 대해 “세월호법이 가장 시급한 민생”이라며 투쟁강도를 높였다. 당내 장외투쟁 반대론이 나오고 있지만 강경파 주장에 묻히는 분위기다.
이 같은 장외투쟁에 대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민생에는 당파도, 여야도, 노사도 있을 수 없다”며 “정부가 경제활성화 정책을 발표하고 국민이 이를 체감하도록 야당이 세월호 난국에서 벗어나 나라의 미래를 걱정해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백승현/손성태/김유미/이준혁/김일규 기자 rainb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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