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연 < KNL디자인그룹 대표 >
인생을 참답게 사는 길은 생업(경제)과 도락(산림)을 함께 하는 것이다. 머물 곳과 즐길 곳이 하나 되는 진실한 장소에 대한 바람 탓일까. 땟국 흐르는 가난한 서생도 꿈꿀 수 있었던 상상 속 주거공간인 ‘의원(意園)’은 조선 후기 문학과 그림으로 그 모습을 내보인다. 옛말로는 별서(別墅)·별저(別邸)요, 요즘 말로는 별장(別莊)이다. 세컨드 하우스로 불리기도 한다.
서울의 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백운동, 청운동 등은 과거 풍광 좋기로 유명한 별장지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마을 동(洞) 자는 원래 ‘산골짜기’란 뜻이라고 했다. 결국은 산빛이 곱고 물 맑은 산자수명의 터가 별장지라는 말이다. 그래서 전국 각지의 골짜기와 호수 주위는 배산임수 명당 터라는 이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A그룹 박 대표의 별장은 경기 가평군의 어느 산골짜기다. 몇 해 전 대지와 맞닿은 계곡과 나지막한 뒷산에 반해 급히 구매를 서둘렀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 부모님 모습을 상상한 것도 땅 매입을 서두른 이유였다. 잠시 머물 때 들리던 계곡물 소리는 청아했고, 창문을 때리던 바람 소리도 운치가 있었다. 물론 부모님의 건강에 이상 신호가 포착되기 전까지다.
산골짜기는 바람길이다. 바람이 일면 기운은 흩어진다. 흩어진 기운은 파장을 만들고 지속적인 바람과 물소리는 소음이 된다. 잠을 자는 동안 소음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 사이에도 신체 각 부분은 끊임없이 반응해 스트레스를 만든다. 의서인 ‘수양총서(壽養叢書)’에는 집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반신불수와 각궁반장(팔다리가 뒤틀리는 증세)을 일으켜 허약자와 노인에겐 마땅치 않다고 경고했다.
또 산골짜기는 낮고 습한 것이 문제다. 사방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지대가 낮은 박 대표의 별장은 음습했다. 습기가 고여 빠져나갈 곳이 없는 운무 가득한 장풍국 ‘요(凹)’ 모양새다. ‘황제내경’에는 습이 쌓여 땀과 소변으로 배설되지 못하면 관절에 이상이 생기고 몸이 붓는다고 했다. 사면이 높고 중앙이 낮은 터는 처음에는 부(富)하나 나중은 가난해진다는 것이 풍수이론이다.
바람과 습기는 산골짜기 텃자리에서 피해야 할 요주의 항목이다. 바람 갈무리는 사방 산의 높이와 맞추고, 긴밀히 에워싸야 한다. 높고 밝고 넓고 평탄한 평지를 찾아 청결한 거처를 마련해야 습기를 막을 수 있다. 토질은 비옥하고 샘물은 감미로워야 한다. 명당은 좌우가 막혀서도 안 된다. 훤히 트여 재리(財利)를 만들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강호한정(江湖閑精)에 목마른 우리는 오늘도 한명회의 압구정(鴨鷗亭)을 꿈꾼다. 남산골 딸깍발이 선비처럼 현실 너머 상상의 주거공간을 하나쯤 만든다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 마음껏 상상하자. 하룻밤에 짓고 부숴도 내가 만든 주거공간이 최고 명당이 아니겠는가.
강해연 < KNL디자인그룹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