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노믹스] 최고가격 경쟁하는 예술품 경매도 '경제 사이클'을 거스르진 못한다

입력 2014-08-22 18:33
'베스트오퍼'로 본 예술품의 경제학

'소득탄력성'에 좌우되는 예술품 경매시장
희귀하고 호황일수록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평생 홀로지낸 경매사에 다가오는 정체모를 여인…


[ 심성미 기자 ]
“100만유로에서 시작합니다. 130만유로 나왔습니다. 뒤편에서 150만유로 제시했습니다.… 270만, 더 없습니까? 팔렸습니다!”

버질 올드만(제프리 러시 분)은 70대 노인으로 나름대로 품위 있는 삶을 추구하는 예술품 감정사다. 바티칸 박물관장에게 작품 검증을 의뢰받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예술품 경매를 주관한다. 하지만 그에겐 남모를 아픔이 있다. 어렸을 적 부모에게 버림받고 수녀원에서 자라 여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된 것.

주변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며 독신으로 살아가는 그의 유일한 낙은 유명 화가들이 그린 여성 초상화를 수집해 틈날 때마다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체불명의 젊은 여인 클레어 이벳슨(실비아 획스 분)으로부터 집안의 모든 물품을 감정해달라는 의뢰를 받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올드만은 광장공포증 때문에 집 밖으로 나오기를 두려워하는 이벳슨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며 결국 사랑에 빠진다.

1000만원짜리가 1000억원으로

‘시네마 천국’을 만든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작품으로 더욱 화제가 된 이 영화는 지난해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 영화의 묘미 중 하나는 올드만이 긴박하게 미술품 경매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그는 작가, 그림이 그려진 연도, 피사체 등을 설명한 뒤 바로 입찰 가격을 정한다. 어떤 제품은 100만유로, 다른 제품은 2만파운드에서 시작한다. 모두 몇천만원을 훌쩍 넘는 고가의 예술품이다. 올드만이 진행하는 경매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만든 굴절접이식 망원경은 입찰가 100만유로(약 15억원)에서 시작해 270만유로(약 40억원)에 팔렸다.

예술품의 가격은 늘 이렇게 비쌌을까.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 그림값은 대개 재료비와 인건비의 합으로 결정됐다. 이 때문에 1504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림값 때문에 법정에서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동굴 속의 성모’라는 작품을 두고 다빈치는 베네치아 금화 100두카토를 원했지만

림 구매자 측은 25두카토 정도만 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논쟁 끝에 그림값은 50두카토로 결정됐다. 순금인 두카토 금화 하나의 무게는 약 4g이었다. 50두카토는 현재 시세로 1000만원쯤일 것이다.

이 그림이 지금 미술 시장에 나온다면 얼마에 팔릴까. 세계에서 손꼽히는 명화를 모아놓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명작 중 명작’으로 꼽히는 이 그림의 가치는 1000억원이 훌쩍 넘을 것이다.

예술품은 가장 비탄력적인 제품

이처럼 예술품의 가치가 수백, 수천억원을 호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뛰어난 예술품엔 공급 탄력성이 없기 때문이다. 공급 탄력성이란 가격이 변할 때 공급량이 얼마나 변하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어떤 재화의 공급량이 가격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그 재화의 공급은 탄력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걸작은 희귀할 수밖에 없다. 공급 탄력성이 제로에 가깝다. 가격이 아무리 많이 올랐다 하더라도 공급량을 더 이상 늘릴 수 없는 예술품의 공급곡선은 거의 완벽하게 비탄력적이다. <그래프>처럼 공급곡선이 수직으로 서 있는 상황에서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은 P1→P2→P3로 수직 상승한다.

경매시장 열기는 소득 탄력성에 좌우

소득 탄력성 또한 미술품의 가치를 매기는 데 있어 중요한 방법이다. 소득 탄력성은 <그림>처럼 소득 변화에 따른 수요의 변화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다. 소득 탄력성은 특정 제품이 사치품인지 생필품인지 구별해준다.

생필품의 경우 소득이 늘어난다고 해서 수요가 증가하지는 않는다. 하루에 1억원씩 번다고 해서 1만원을 버는 사람보다 먹는 밥의 양이나 필요한 치약의 양이 많아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고가의 미술품은 다르다. 소득이 증가하면 할수록 수요가 증가하고 소득이 감소하면 수요도 감소한다. 이는 미술품이 ‘사치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미술 경매 시장에도 소득의 증감은 큰 영향을 미친다. 세계 미술 경매시장은 1980년대 일본 경제 호황으로 ‘붐’이 일었다가 1990년대 버블이 꺼지면서 동반 추락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미술감정협회에 따르면 2007년 국내 미술 경매 낙찰 총액은 1594억원 규모였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뒤 경기가 급락한 2009년엔 663억원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

올드만은 예술품의 진가를 판별해낼 줄 아는 능력을 교묘히 이용해 경매에서 이득을 취한다. 1930년대 후반에 죽은 러시아 풍경화가 얀스키의 초상화가 경매에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낸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경매에 온 손님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보리스 그레고리안의 문하생 작품이며 작품명은 ‘갈증’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얀스키가 일생 동안 그린 초상화 3장 중 1장인 귀한 그림이었다. 그는 경매 참여자들을 속인 뒤 친구를 경매에 참가시켜 2만유로(약 3000만원)의 헐값에 그림을 사들인다. 친구에게 수고비를 두둑이 챙겨주고도 엄청난 돈을 벌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미술품 경매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작품을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 사이의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미술품 애호가들의 대부분은 작품의 정확한 가치를 잘 모른다. 예술품이 지닌 가치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안목과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보 비대칭성 때문에 예술 시장에선 경매사나 큐레이터, 비평가 등 매개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진짜 사랑vs가짜 사랑

이 영화의 잔인한 반전은 올드만을 향한 이벳슨의 사랑이 그림을 노린 사기극이었다는 것이다. 이벳슨과 행복한 노후를 보낼 생각에 마지막 경매를 마치고 온 올드만은 텅 비어 버린 비밀창고를 발견하고 주저앉는다.

하지만 그는 이벳슨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거짓 경매로 비싼 그림을 사들이고, 명화 속 허구의 여성만 사랑했던 올드만은 이벳슨으로 인해 진짜 사랑에 눈뜨게 된 것이다. 그는 경찰서에 가는 대신 이벳슨이 좋아한다고 했던 찻집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모조품은 모조품일 뿐”이라던 그가 젊은 아가씨의 가짜 사랑(모조품)에서 진짜 사랑(진품)을 찾아낸 것이다.

심성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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