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행·전철…空約에 발목 잡힌 지자체, 첫발도 못 뗐다

입력 2014-08-20 21:20
수정 2014-08-21 04:01
시·도지사 공약 무더기 표류

출범 50일 지나도록 13곳 실천계획 못 내놔
재원 생각안한 선거 공약 무리수 결국 '뒤탈'


[ 박기호 / 강경민 / 최성국 기자 ] 광주광역시는 윤장현 시장의 주요 공약인 도시철도 2호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지하 4~9m 사이의 낮은 깊이에 전철을 건설하기로 정부 승인까지 받았지만 노면전철이나 고가전철 등 대안도 검토 중이다. 사업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시민들은 “정부 승인을 다시 받으려면 6년가량 늦춰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취임 50여일을 맞은 민선 6기 광역지방자치단체장들이 무리한 공약에 발목이 잡혀 전전긍긍하고 있다. 상당수 광역지자체장은 재원이 공약을 이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주요 공약의 포기 여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공약 보류·재검토설 ‘솔솔’

경기도는 남경필 지사 공약인 도민은행 및 도립대학 설립을 재원 부족, 금융권 반대 등을 이유로 사실상 보류했다. 이낙연 전남지사의 공약인 농어촌지역 버스 완전공영제와 동부권 제2청사 건립도 재원 부족 등으로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대전시 대구시 등 상당수 지자체에서도 주요 공약 이행을 놓고 벌써 지자체와 주민 사이에 갈등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한 광역지자체 기획관리실장은 “세수는 제자리인데 무상급식 등 중앙 정부와 공동으로 예산을 부담하는 사업은 늘어 공약을 이행할 여력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주요 공약이 무산될 조짐을 보이자 주민들은 ‘선거 때 한 약속을 지키라’며 반발하고 있다.

전남 순천시 조례동에 사는 김모씨는 “순천에 전남도 동부출장소가 있어 제2청사가 들어설 것으로 기대했다”며 “전남도가 2청사를 두지 않고 환경 관련 업무는 넘겨 단속 우려만 커졌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대구 미술계는 현대미술의 거장인 이우환 화백을 기리는 ‘이우환과 그의 친구들 미술관’ 건립사업에 대한 재검토설이 나오자 ‘공약 이행’을 요구하며 대구시를 압박하고 있다.

○“정치 행보 발목 잡힐라” 신중

지자체장들이 주요 선거공약 이행 로드맵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세종시를 제외한 16개 광역단체 가운데 공약 이행 방안을 마련한 곳은 재선에 성공한 서울시와 충남도, 경남도 등 세 곳뿐이다.

공약 실천 방안 확정이 늦어지고 있는 지자체들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약실천위원회 등을 통해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고 있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통해 실천이 어려운 공약을 골라내고, 주민들이 원하는 공약을 우선순위에 올리면서 현실성 없는 일부 공약을 포기하는 데 따른 불만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민 기대치 너무 높아 문제”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김기현 울산시장, 이낙연 전남지사 등은 초선 지자체장임에도 정치적 영향력이 큰 중진 정치인들이다.

주민들은 정부가 홀대하기 힘들고 중앙 정치무대에서 통하는 지자체장을 뽑은 만큼 대부분 공약을 이행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지자체장들은 실제 집행하는 공약 수를 줄여 이행률을 높이는 형태로 자신의 성적표를 끌어올리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다.

한 광역시 행정부시장은 “재정 여건 등에 비춰 모든 공약을 실행하기는 힘든 게 사실”이라면서도 “상대 후보와의 선거전 과정에서 제시한 공약은 이해관계가 크게 얽혀 있어서 공약 이행을 둘러싼 후폭풍도 불어닥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기호 선임기자/강경민/광주=최성국 기자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