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부동산 투자 220억弗…72% 늘어
기업들 2014년 21억달러 투자…생산기지 건설
"중국이 생산하고 미국이 산다" 이젠 옛말
[ 뉴욕=이심기 기자 ]
올해 미국 뉴욕 맨해튼을 찾은 중국 부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부동산은 센트럴파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90층 높이의 ‘원 57(One 57)’ 빌딩이었다. 맨해튼에서도 최고급 아파트로 유명한 이 빌딩의 81층 전체를 올초 한 중국인이 5500만달러에 사들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요즘 맨해튼에선 한 채당 1800만달러에 달하는 아파트를 현금으로 사는 중국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미국 경제에서 ‘차이나 머니’의 위세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내수의 한 축을 담당하는 부동산 시장뿐 아니라 제조업분야에서도 중국기업들의 직접투자가 급증하면서 ‘메이드 인 유에스, 바이 차이나(made in US, by China·미국에서 생산하는 중국제품)’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美 부동산 경기 떠받치는 중국
미국부동산중개협회(NAR)가 지난달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 3월 기준으로 최근 1년간 중국인의 미국 부동산 투자규모는 220억달러로 전년 대비 72% 증가했다. 외국인 전체 부동산 투자액의 12%로, 캐나다(19%)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특징은 고가 주택의 구입 비중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중국인의 평균 부동산 매입단가는 59만달러로 캐나다 21만달러의 약 3배에 이른다.
대형 상업용 부동산의 매입도 잇따르고 있다. 중국 민간기업인 포선인터내셔널은 최근 뉴욕 맨해튼의 60층짜리 원체이스맨해튼 플라자 빌딩을 7억2500만달러에 사들였다. 부동산 기업인 소후차이나의 장신 회장도 지난해 34억달러에 달하는 GM의 맨해튼 업무용 건물에 14억달러를 투자, 40%의 지분을 확보하기도 했다.
중국인들의 부동산 투자가 늘면서 미국 부동산정보제공 사이트인 질로닷컴은 최근 100% 중국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중국 생산, 미국 소비는 옛말
제조업 분야에서도 중국자본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중국이 생산하고, 미국이 수입한다’는 것은 옛 말이 돼 버렸다.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윌콕스카운티의 파인힐에선 중국의 동파이프 생산업체인 진룽퉁관(金龍銅管)이 건설한 공장이 지난 5월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텍사스주 그레고리에선 중국의 톈진파이프가 10억달러를 투자해 만든 오일과 가스용 강관공장이 이르면 올해 말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
중국 유리제조업체인 후아요는 오하이오주 모레인에서 자동차용 유리를 생산 중이며, 중국 키어그룹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랭거스터에 2억1800만달러를 투자, 산업용 섬유공장을 건설했다.
컨설팅업체 로디엄그룹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4억달러에도 못미쳤던 중국 기업들의 대미(對美) 제조업 투자는 올해 상반기에만 21억달러를 기록했다. 협의 중인 투자규모만 100억달러에 달한다. 미 상무부 국제무역청(ITA) 자료를 보면 2008년 이후 5년간 중국기업의 대미투자 증가율은 연평균 70.8%로 룩셈부르크의 76.5%에 이어 2위에 올라있다. 지난해 중국 기업이 미국에서 만든 정규직 일자리 수만 8만개다. 2010년 2만개에서 불과 3년 만에 4배 증가했다.
AP통신은 그동안 외국기업에 눈길을 주지 않던 미국 지방정부들이 중국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 면제와 공장부지 제공 등의 유인책을 내걸고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미·중 생산비 격차 줄어
중국기업이 새로운 생산기지로 미국을 선택하는 주된 이유는 생산비 격차가 빠르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중국은 인건비와 전기료가 급등한 반면 미국은 셰일가스 붐으로 에너지비용이 대폭 떨어져 양국 간 생산비 격차가 5% 이내로 좁혀졌다. 게다가 달러화에 대한 중국 위안화 가치가 2004년 이후 30% 이상 오르면서 중국 제품의 수출가격이 상승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보스턴컨설팅은 지금의 추세대로 중국의 인건비와 에너지 가격이 오른다면 2018년엔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 비용이 더 적게 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부에선 중국의 대미 직접투자 증가로 글로벌 경쟁 구도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 최대 육가공업체 솽후이가 지난해 5월 미국 돼지고기 가공업체 스미스필드 푸드를 71억달러에 인수해 글로벌 업계 1위(WH그룹으로 사명 변경)로 올라선 게 대표적 사례다. 미국의 로펌 스키어앤드샌더스의 중국계 변호사 마오 퉁은 “에너지와 제조업, 서비스업 분야에 이르기까지 세계시장에서 미·중 간 새로운 합작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