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 냉연포탕·갈치호박국, 지금이 제철…더위 물렀거라
강제윤 < 시인·인문학습원 섬학교 교장 gilgu1@hanmail.net >
기력 회복의 최고봉 바닷장어탕
제주도를 평정한 조폭 두목이었던 서동철. 그는 후일 ‘개과천선’해 누나인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 함께 올레길을 만드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그는 키가 작고 다부지다. 그런데도 힘이 천하장사다. 50대 중반인 지금도 자신보다 두 배쯤 큰 청년들을 간단하게 들어올린다. 나는 그가 평상시에 3시간 이상 자는 것을 못 봤다. 그런데도 늘 힘이 넘쳤다. 이유가 무어냐고 물었다. 장어 덕분이라 했다. 그의 어린 시절 천지연 폭포에는 어른 팔뚝만 한 민물장어들이 넘쳐났다. 그 큰 장어들을 수시로 잡아다 끓여 먹었다. 장어가 평생 힘의 원천이었다. 두말할 것 없이 민물장어는 힘의 대명사이며 여름 보양식의 대표주자다. 하지만 이제 하천과 개울에 넘쳐나던 자연산 민물장어를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강과 하천의 하구를 막고 있는 둑 때문이다.
둑을 터야 민물장어나 은어 떼가 돌아온다. 둑이란 둑은 모두 터야 우리 강도 살아난다. 아무튼 이제는 양식 민물장어값도 만만치 않고 귀해졌다. 하지만 남도 사람들의 보양식은 여전히 장어다. 바다에서 나는 장어(붕장어)가 있기 때문이다. 장어는 다른 물고기들이 잠든 사이 습격해서 닥치는 대로 집어삼킨다. 난폭함 때문에 ‘바다의 갱’으로 불릴 정도로 기력이 왕성하다. 그래서 장어탕 한 그릇은 보약 한 첩이라 했다. 된장을 풀어 끓이는 신안이나 완도, 목포의 장어탕이 진국이다. 또 마른 장어로 끓이는 장어간국을 맛본 사람은 그 맛을 평생 잊지 못한다. 장어간국을 하는 곳은 흔치 않은데 그중 신안 흑산도에서는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찰떡궁합 갈치백반과 갈치호박국
‘못가겠네 못가겠네/놋닢 같은 갈치 뱃살 두고/나는 시집 못가겠네”
남도 섬 지방 처녀들이 부르던 강강술래의 매김 소리다. 그 달보드레한 갈치 뱃살을 마다할 이 누가 있으랴. 지금은 귀하신 몸이 됐지만 예전 우리의 밥상에서 가장 흔했던 갈치. ‘불욕비전강(不欲費錢)이면 수매갈치상(須買葛侈)’이라 했다. ‘갈치상’은 소금으로 절인 갈치를 이른다. ‘돈을 아끼려거든 절인 갈치를 사먹으라’는 말이다. 갈치는 칼치라고도 부르는데 경기와 경북 이남에서는 갈치라 부르고 황해와 강원 이북에서는 칼치라 한다. 신라 때는 칼을 갈이라 했는데 신라의 판도에 들었던 지역에서는 갈치, 그 외의 지방에서는 전부 칼치라 한다.
갈치는 여름부터 가을이 제철이다. 전라도 백반 상에는 아직도 갈치 한 도막쯤 올라가야 정석이다. 거문도 갈치로 구워내는 여수 이순신 광장 부근의 두툼한 은갈치구이도 달고, 목포 항동 시장 인근의 백반집 먹갈치구이도 그 감칠맛이 입에 착 감긴다. 해안이나 섬 지방에서는 갈치를 국으로도 많이 끓였는데 특히 애호박이 주렁주렁 열리는 여름철에는 갈치 호박국이 각별하게 사랑받았다. 호박이 몸에 쌓인 열기를 빼주는 역할을 하니 더위를 이기는 음식으로 그만인 것이다.
냉연포탕과 샛서방고기와 농어국
낙지는 《자산어보》에 “살이 희고 맛은 달콤하고 좋으며, 회와 국 및 포를 만들기에 좋다. 이것을 먹으면 사람의 원기를 돋운다”고 했다. 옛날 해안지방에서는 여름 무더위에 쓰러진 황소에게 낙지 몇 마리 먹이면 벌떡 일어났다. 흔히 남도에서는 낙지탕탕이, 낙지초무침, 연포탕, 낙지꾸리 등으로 다양하게 요리되지만 여름 낙지의 별미는 냉 연포탕이다. 살짝 데친 낙지에 갖은 채소와 양념을 넣고 냉국처럼 차갑게 말아내는 냉 연포탕 한 그릇이면 마지막 남아 있던 더위까지 다 물러간다. 갯벌이 우유처럼 뽀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 신안 하의도에 가면 맛볼 수 있다.
갈치와 함께 여수에서 꼭 먹어봐야 할 생선이 군평선이다. 금풍쉥이, 딱돔 등 다양한 별칭이 있는데 그중 압권은 샛서방 고기다. ‘너무 맛있어서 본서방 몰래 숨겨 놨다가 샛서방한테만 먹였다’ 해서 샛서방 고기란 이름을 얻었다. 또 하나 민어 못지않은 여름 보양식은 농어다. 중국 진나라 때 사람 장한이 고향 송강의 농어국이 그리워 벼슬을 버렸다는 고사가 있을 정도로 농어국의 풍미는 뛰어나다. 농어회 또한 쫄깃한 식감이 최고다. 신안 우이도 어느 민박집에서 먹어본 여름 농어회와 농어국 맛을 평생 잊을 수 없다.
강제윤 < 시인·인문학습원 섬학교 교장 gilgu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