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총리' 이어 대통령제 추진
5년 뒤 재임땐 21년간 통치…'터키의 푸틴' 1人 천하 예고
[ 김순신 기자 ] 터키가 10일(현지시간) 시행한 사상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당선됐다. 터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오후 10시 집권 정의개발당(AKP) 후보인 에르도안 총리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해 당선이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터키 민영방송 NTV와 CNN튀르크 등은 개표 상황 자체 집계 결과를 바탕으로 에르도안 총리가 51.8%의 득표율로 경쟁 후보 에크멜레딘 이흐산오울루(38.5%)와 셀라하틴 데미르타시 후보(9.8%)에게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오는 28일 대통령에 취임한다.
○총리 연임 막히자 대통령 출마
에르도안 총리는 지난 11년간 터키를 실질적으로 이끌어왔다. 의원내각제인 터키는 대통령이 있지만 총리가 실권을 갖고 있다. 터키는 2007년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7년이던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단축하고 한 번의 연임을 허용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그동안 여당 대표로서 총리를 3연임했다. 그러나 당규상 당대표 4연임이 불가능해 총리에서 물러나야 하자 대통령에 출마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대통령제로의 개헌과 현행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는 “이번 선거는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며 “개헌 전에도 내각 주재권 등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총리’에서 ‘대통령’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에르도안이 통치하는 터키’는 바뀌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만약 에르도안 총리가 5년 뒤 대통령 연임에 성공하면 21년간 실질적인 터키 통치자 자리에 있게 된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터키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같은 지도자가 나타났다”며 “에르도안의 승리는 독재가 강화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총리 시절 연평균 5.5% 성장
에르도안 총리는 올초 비자금 은닉과 뇌물수수를 논의하는 아들과의 통화내용이 공개돼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지난 3월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압승했다. 터키 국민들이 그가 주도해온 경제발전 전략을 지지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그는 2003년 집권 이후 경제발전 전략을 내수에서 수출 중심으로 재정비하고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터키는 에르도안 집권 11년간 연평균 5.5%대의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선거의 낮은 투표율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지방선거 때 90%에 달했던 투표율은 역사상 최저 수준인 70%대로 주저앉았다. WSJ는 에르도안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국민에게 정치적 무력감을 줘 선거 참여율이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 에르도안은 누구
‘선거의 제왕’…7차례 선거 모두 승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선거의 제왕’으로 불린다. 2001년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한 이후 일곱 번에 걸친 모든 선거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1954년 흑해 연안 도시 리제에서 태어난 그는 이스탄불 마르마라대학을 졸업한 뒤 이슬람계 정당인 국가구원당의 이스탄불 청년지부장을 맡아 정치를 시작했다. 이슬람계 정당인 AKP를 창당한 이후 그의 ‘불패 신화’는 시작된다. 창당 후 첫 선거였던 2002년 총선에서 34.1%의 득표율로 전체 의석의 66%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터키 건국 이후 첫 이슬람 정당의 단독 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에르도안 총리는 2007년과 2011년 총선에서도 잇따라 승리해 3연임에 성공한다.
그는 지방선거에서도 연전연승했다. 2004년 지방선거에서 40%의 지지를 받은 뒤 2009년 지방선거에서도 집권당을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올초 부패 스캔들 등의 악재로 위기에 빠졌으나 야당을 비판하는 네거티브 전략을 통해 지지층을 결속시켜 지난 3월 지방선거에서 46%에 달하는 지지를 확보해 예상 밖의 압승을 거두기도 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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