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루프타이

입력 2014-08-10 21:42
수정 2014-08-11 05:36
고창 꽃무릇, 제주 문주란·흰수선화…
'다른 곳엔 없는' 관광 기념품 팔았으면

박병원 < 은행연합회장 bahk0924@yahoo.co.kr >


관광지에 가면 누구나 조금은 느슨해진다. 추억을 위해 또는 가족이나 친지들을 위해 뭔가 살 만한 것이 없을까 고민한다. 유리공예품에 특히 집착하는 필자는 프라하에서 유리로 만든 꽃, 베니스에서 각종 유리 장식품, 그리고 홋카이도 오타루에서는 유리 루프타이를 산 적이 있다.

관광 기념품의 기본은 ‘다른 곳에서는 없을 것’이다. 유럽 여행에서는 가는 곳마다 그 지역 특유의 재료와 디자인으로 체스판과 말을 만들어 파는 것을 봤다. “미리 사면 짐도 되고 값도 잘 판단이 안 되니 좀 더 다니면서 값도 비교해보고 나중에 사자”고 생각했다가 다시는 같은 것을 보지 못한 적이 많았다. 루프타이는 매번 같은 것만 매고 다닐 수 없어 더 사려고 했는데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가 없어 결국 오타루에 다시 갈 수밖에 없었다.

한국 관광지에서는 도무지 살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디 가나 효자손과 지도가 인쇄된 손수건 등 대동소이한 물건들을 팔고 있다. 요즘은 게다가 소소한 관광기념품이 중국산으로 통일이 된 느낌이다. 싸구려 기념품을 보고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겠는가. 우리나라에는 공예과 출신이 어느 나라 못지않게 많다. 재료도 찾아보면 각 지역의 특수한 게 많을 것이다. 공예품 수준의 관광기념품이 나와야만 관광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이룰 수 있다.

‘다른 데는 없는 팔 거리’가 또 있다. 꽃 사진을 찍으러 홋카이도 북쪽 한 섬에 갔을 때 검은 나리(백합) 알뿌리를 팔고 있는 걸 봤다. 다른 곳에는 없는 것이다. 고창 선운사 꽃무릇 축제에 갔을 때 꽃무릇 알뿌리를 몰래 반출하다 적발되면 엄청난 벌금을 물린다는 입간판이 곳곳에 있었다. 많은 사람이 탐을 낸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왜 재배하거나 적절한 양을 솎아내 관광기념품으로 팔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제주도 동쪽 난섬은 문주란 자생지로, 씨가 지천에 깔려 있는데 일부를 수거해 팔면 어떨까. 서귀포시 대정읍의 흰수선화도 마찬가지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사람들의 취향도 다양해지고 고급화된다. 그에 맞춰 다양한 살 거리를 제공하면 좋겠다. 수십, 수백명이 먹고 살 거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런 관광기념품 사업이 많아졌으면 한다.

박병원 < 은행연합회장 bahk0924@yaho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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