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경찰, 교황 지키기 '3·3·3 작전'…'84년 딱총사건' 다신 없다

입력 2014-08-09 09:00
31개 구역 나눠 시복식 통제
3만명 경찰력 행사장에 투입
300대 금속탐지기 출입통로에 설치


[ 김태호/오형주 기자 ]

지난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강신명 서울지방경찰청장(경찰청장 후보자)과 서울 시내 일선 경찰서장 8명이 모였다. 16일 열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복식(諡福式) 행사 경호에 앞서 현장 답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강 청장은 각 경찰서가 맡은 구역을 꼼꼼히 둘러보며 서장들로부터 경비 계획을 보고받았다. 다음날엔 나머지 23개 경찰서장을 불러 같은 방식으로 브리핑을 받았다.

강 청장은 지난달 초부터 교황의 방문이 예정된 지역을 훑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주말마다 등산복 차림으로 서소문, 광화문 일대를 돌며 고층빌딩들을 살피고 차선의 경로를 점검했다. 경호 취약지역을 미리 파악해 작전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서울 지역 한 경찰서장은 “청장 주관으로 수시로 경호 계획에 대한 회의를 열고 있다”며 “보안사항이라 정확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시복식 행사장을 31개 구역으로 나눠 각 경찰서가 관할 구역을 직접 통제하는 방식의 작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이 1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경호를 맡은 경찰이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다. 시복식 행사가 열리는 서울 이외에도 교황 방문이 예정된 대전, 충북 지역 경찰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교황이 대중과 스킨십을 선호하는 데다 이번 방한 기간에 방탄복을 착용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시복식 행사 당일에만 3만명의 경찰력을 동원하는 등 사상 최대 규모의 경호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

◆31개 경찰서장 구역별 현장지휘

가장 이목이 집중될 행사는 16일로 예정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이다. 시복식이란 가톨릭 교회에서 순교자 등에 대해 ‘성인(聖人)’의 전 단계인 ‘복자(福者)’로 공식 선포하는 의례다. 교황이 로마가 아닌 국가의 교회에서 직접 시복식을 주례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시복식 행사가 열리는 당일 서울 지역 31개 경찰서는 광화문광장을 31개 구간으로 나눠 책임 경비에 나선다. 구역별 최종 책임자는 해당 경찰서장이다. 서장을 비롯해 일선 형사들은 행사 참여자와 비슷한 사복을 착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발생할 경우 해당 구역에 배치된 형사들이 직접 나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다. 경찰서별로 행사 당일 직원의 3분의 1 이상이 현장에 동원될 것으로 전해졌다. 시복식 행사장 경비를 위해 투입되는 경찰은 모두 3만여명이다.

경찰은 시복식 행사장 주변을 방호벽으로 둘러싸기로 했다. 시민들이 교황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하면서 출입자를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서다. 행사장 주변에는 높이 0.9m에 전체 길이가 4.5㎞에 달하는 방호벽이 설치된다. 방호벽 뒤에 경찰관들이 배치되며 6m마다 출입통로가 설치된다. 경찰은 출입통로에 금속탐지기 300대를 설치해 테러에 사용될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사전에 차단할 방침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탄차를 사용하지 않고, 방탄복도 입지 않기로 한 만큼 저격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경찰이 행사장 주변 100여개 고층빌딩 경호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는 이유다. 고층빌딩은 행사 장소와의 거리에 따라 등급이 매겨져 경찰력이 투입된다. 행사 당일엔 빌딩 옥상은 폐쇄되고, 저격수들이 배치될 것으로 전해졌다.

무더운 여름 날씨지만 경호 문제로 행사장엔 그늘막 설치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시복식 당일은 30도가 웃도는 무더운 날씨와 소나기가 예상된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는 데다 날씨까지 무더울 것으로 보여 걱정”이라며 “교황을 경호하는 게 최우선 임무지만 안전사고로 시민들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데도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G20 경호작전과 비슷…규모는 최대

현재 계획된 교황 경호작전은 2010년 서울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때의 경호작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당시 각국 정상들을 경호하기 위해 높이 2m, 전체 길이 1.9㎞의 방호벽이 행사장인 삼성동 코엑스 주변에 설치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중과의 스킨십을 원해 방호벽의 높이는 낮아졌지만 길이는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고층빌딩이 밀집한 코엑스와 광화문광장의 특성상 저격에 대비한 작전도 비슷한 형태로 이뤄진다. G20 정상회의 때도 코엑스 주변 고층빌딩엔 최정예 저격수들이 배치됐다. 사람들의 이상행동을 감지할 수 있는 열영상 탐지 카메라를 장착한 헬기와 차량 테러에 대비한 차량 하부 검색장비도 G20에 이어 이번 경호작전에도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경호작전 방식은 비슷하지만 규모는 G20 정상회의 때보다 훨씬 크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G20 정상회의 당시엔 경호 대상이 분산돼 있었지만 이번에는 교황에게 모든 경비력이 집중된다. 행사장에 몰려드는 인파도 G20 정상회의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게 분명하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시복식에 공식적으로 초청받은 천주교 신자 20만명과 시민 등 100만명의 인파가 집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일선 경찰서 형사과장은 “경호 대상이 방탄복 등을 전혀 착용하지 않기로 해 초비상이 걸렸다”며 “한 사람에 대한 경호로는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1984년 트라우마?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 경호작전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강도가 세다. 교황이 올초 방문했던 브라질에서는 6000여명의 경찰력이 동원됐다. 군 병력 1만명을 합쳐도 이번 방한 기간에 동원되는 경찰력보다 작은 규모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10년 방문했던 프랑스에서도 경찰력 6500명이 경호를 맡았다.

각국의 동원 경찰력만 비교해 보더라도 한국이 다른 나라들보다 강력한 경호를 준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방호벽을 행사장 둘레에 배치하고 금속탐지기를 대대적으로 투입하는 것도 해외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다.

이 같은 경호작전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때 발생한 ‘딱총 사건’의 트라우마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한 대학생이 명동성당을 지나는 교황 탑승 차량에 뛰어들어 장난감 딱총 두 발을 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 입장에서는 이런 사건이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에다 세월호 사건 이후 광화문광장 주변에서 집회와 시위가 끊이지 않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한 일선 경찰서 수사과장은 “남북 분단 상황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더 강도 높은 경호와 경비를 펼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은 외국 정상이나 국빈 경호에 철저한 편이라 G20 정상회의 등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아왔다”며 “시복식이 열리는 광화문 일대는 공중, 지상, 지하에 대한 입체적 경호가 필요한 지역인 만큼 경찰이 대대적인 인력 투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호/오형주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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