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벌의 원조, 일본 15대 재벌 분석해 봤더니<하>
일본 재벌은 이렇게 해체됐다 , 2차 세계대전 강제 해체
돈이 넘쳐나는 재벌이라고 해서 결코 평안하고 무사한 시기만 보낸 것은 아니다. 시대의 변화를 좇지 못해 충격을 받고 사라진 재벌도들 많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일본 재벌에 대한 첫 번째 충격파가 왔다. 전쟁 기간 중 일본 기업들은 전쟁 특수를 맘껏 누렸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나자 특수 당시 생산제품들이 대량으로 남아돌게 됐다. 당연히 생산에 투입됐던 자금 회수가 어려워졌다. 많은 재벌들이 경영난을 겪게된다. 전쟁 특수의 반작용으로 공황 상태에 빠졌다.
구하라(久原)재벌은 구하라상사의 도산에 따라 기업 해체에 몰렸다. 후루카와상사의 경영 파탄은 후루카와재벌 전체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1927년 더 비참한 사건이 일어났다. 금융공황의 발생이다. 공황 사태의 발단은 간토대지진의 ‘어음 정리 법안’ 심의중에 시작됐다. 국회에서 대장상(기획재정부장관)의 은행파탄 관련 실언이 단초가 됐다. 많은 시민들이 예금을 찾으려고 은행으로 몰려들어 은행들이 연쇄 파산했다.
공황 상황에서 스즈키상점도 도산했다. 스즈키상점은 한때 미쓰이, 미쓰비시에 필적하는 규모를 자랑하던 재벌이었다. 전후 공황기의 경영 위기를 극복한 재벌들은 승자군으로 살아남았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군에 의해 재벌이 공식 해체될 때까지 건재했다.
금융공황 종료 후 재벌들 사이에선 ‘재벌 전향’ 형태로 개혁 작업이 진행됐다. 재벌들에 부가 집중된 결과 사회적으로 고조된 ‘재벌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재벌 개혁이 진행되는 동안 신흥 기업진단들도 하나 둘씩 생겨났다. ‘신흥 재벌’로 불리는 기업들이다. 독립된 기업의 주식을 모회사가 소유해 다른 회사를 지배하는 형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대약진해 군부의 정책적 지원을 받아 성장한 기업들이 많다. 아이카와재벌(닛산기업연합), 닛치쓰기업연합, 닛소기업연합 등은 중공업에서 큰 존재감을 드러냈다. 기존 재벌과 신흥 재벌들은 일본의 전쟁 수행을 경제, 기술, 물자 공급 등으로 적극 지원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자 연합군은 동양의 작은 나라인 일본이 어떻게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수 있는지 원인 규명에 집중했다. 특히 전쟁 자금원이 어디인지에 관심을 가졌다. 연합군 측의 결론은 “돈 많은 자산가층에 부가 집중됐고, 그들이 전쟁 수행에 협력했기 때문”으로 결론을 내렸다.
종전 후 일본의 재벌 해체가 강행된 배경이다. 재벌을 완전히 없애 일본 경제를 민주화하고, 부의 일극 집중을 막아 일본의 전쟁 수행을 막자는 의도에서였다. 군국주의 일본의 부활을 경제적 측면에서 저지하기 위해 재벌 해체가 진행됐다는 게 일본 측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창업자 일족들이 재벌의 최상위에 위치하고 있다. 그 아래 본사가 직계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이들 직계회사들이 자회사와 ‘손자회사’들을 거느리는 구조다. 이런 구조로 인해 최정상의 창업자 일족에 부가 집중되고, 배타성이 생기게 된다.
연합군의 재벌 해체 방침에 따라 재벌 본사가 독점했던 주식은 시장으로 흩어지게 됐다. 재벌 본사가 산하기업을 강력하게 지배하던 일본의 재벌 구조도 붕괴됐다. 재벌 관련 기업들도 ‘과도 경제력 집중 배제법’에 따라 분화돼 규모가 축소됐다. 일본 재벌의 해체다.
한경닷컴 최인한 뉴스국장 jan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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