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의 비밀'로 슘페터賞 받은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 후발국 추격 어려운 '롱 사이클' 산업 키울 때"

입력 2014-08-06 23:55
日이어 아시아 두 번째 수상
혁신 관점서 선진·후진국 분석
정책적 시사점 높은 평가받아
"바스프처럼 100년 넘는 기술을"


[ 오형주 기자 ] “한국은 그동안 기술 사이클이 짧은(short-cycle) 정보기술(IT)산업을 중심으로 선진국을 따라잡았습니다. 이제 중국이 무섭게 추격해오는 상황에서 앞으로 한국이 선진국으로 안착하기 위해선 의료 바이오 부품소재 등 기술 사이클이 긴 산업을 키워야 합니다.”

지난 7월27일부터 30일까지 독일 예나(Jena)에서 열린 국제 슘페터학회 총회에서 ‘슘페터상(Schumpeter Prize)’을 받은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54·사진)는 6일 기자와 만나 이같이 강조했다. 슘페터상 수상작은 지난해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에서 나온 이 교수의 영문 저서 ‘Schumpeterian analysis of economic catch-up:knowledge, path-creation, and the middle income trap(경제추격에 대한 슘페터학파적 분석:지식, 경로창출, 중진국함정)’이다.

슘페터상은 오스트리아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를 기리기 위해 슘페터학회가 2년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저작물에 수여한다. 선진국 이외 국가 수상자는 이 교수가 처음이며 아시아에선 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이 교수는 “후발국의 선진국 추격과 경제 성장 과정을 슘페터가 강조한 대로 혁신의 관점에서 분석했다”며 “기업, 산업, 국가 차원 분석을 일관되게 수행하고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해 높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저서에서 후발국이 기술 사이클이 짧은 산업을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에 주목했다. 이 교수는 이를 ‘추격의 비밀’이라고 불렀다. 예컨대 한국과 대만이 택한 IT산업처럼 기술이 빠르게 변할수록 선진국이 가진 ‘기술 수명(cycle time of technology)’이 빨리 소멸해 후발국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1980년대 중진국에 도달한 한국 대만과 남미를 비교하며 현재 남미가 중진국함정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과 대만은 선진국 틈새를 파고들 수 있는 IT로 기회를 잡았지만 남미는 제약 등 선진국이 우월적 지위에 있는 ‘롱 사이클’ 산업에 매달려 차이가 벌어졌다”며 “중국은 남미와 다르게 IT 등 ‘쇼트 사이클’ 산업을 키우고 있어 곧 중진국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 교수는 최근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중국의 샤오미 화웨이 등에 위협받는 상황을 자신의 이론으로 설명했다. 그는 “‘쇼트 사이클’ 산업은 추격하기도 쉽지만 추격당하기도 쉽다”며 “삼성은 바이오 부품소재 등 ‘롱 사이클’ 산업으로 중심축을 점차 이동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달 23일 삼성그룹 사장단회의에서 특강한 그는 “삼성이 가장 부러워하는 기업은 애플이 아닌 바스프(BASF)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바스프처럼 100년이 넘도록 후발 주자의 추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라고 전했다.

앞으로의 연구계획에 대해 이 교수는 “이번 저서의 연장선상에서 추격-추월-추락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일관되게 분석하는 연구를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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