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이순신 장군 갑옷의 비밀은 … 권유진 감독 인터뷰

입력 2014-08-06 07:11
수정 2014-08-06 07:51
'군도'와 '명량'에 이어 6일 '해적'이 개봉했다. 편당 제작비 100억 원을 훌쩍 넘긴 사극 '빅3'가 모두 영화관에 걸렸다. 한경닷컴은 해적 개봉일을 맞아 사극 세 편의 의상감독이 풀어놓는 영화 의상 이야기를 준비했다. 첫 번째 주인공은 명량과 해적의 의상을 담당한 권유진 의상감독이다. [편집자주]


"영화의상은 고증과 (영화적 재미를 위한) 현실 간 줄타기를 절묘하게 해내야 합니다. 명량의 이순신 장군 갑옷은 18편의 논문과 최근 출토된 유물, 시대적 배경에 입각한 추론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만들었습니다."

영화 명량과 해적의 의상감독을 맡은 권유진 해인엔터테인먼트 대표(사진)는 1일 기자와 만나 "명량의 의상은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를) 언제 또 만날 수 있을 지 모른다는 각오를 담아 만든 뜻깊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권 감독은 임권택 감독의 1985년작 '길소뜸'을 시작으로 150여 편의 한국영화 의상을 책임진 업계의 '장인'이다. 한국의 첫 영화 의상 디자이너인 어머니 이해윤 선생의 뒤를 이어 영화계에 뛰어든 후 한길만 걸어왔다.

'변호인' '광해, 왕이 된 남자' '웰컴 투 동막골' 등에서 빼어난 솜씨를 선보였다. 올 여름 개봉한 대작 사극 세 편 중 두 편인 명량과 해적의 의상을 도맡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명량에서 권 감독은 고증과 상상력을 겸비한 1000벌의 의상으로 등장 인물들에게 현실성을 부여했다.

특히 이순신 장군 갑옷을 비롯한 조선군 복식이 관건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실물이 없어 각종 논문과 부산 동래읍성 유적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찰갑(札甲·비늘갑옷) 등 유물들을 샅샅이 검토해 디자인에 반영했다.

권 감독은 "그동안 사극에 많이 나온 미늘갑옷은 임진왜란보다 100~200년 후 나온 방어능력이 낮은 의장용 갑옷" 이라며 "임진왜란 당시엔 찰갑과 함께 동물가죽이나 쇠로 만든 찰을 안에 대고 바깥쪽에서 쇠로 박아 방어력을 높인 두정갑을 많이 입었다"고 설명했다.

배에서 조총을 막아야 하는 수군 사병은 두정갑을, 장수의 경우 찰갑을 입히기로 결정했다. 영화적 미학을 위해 장수 갑옷에는 귀면을 양각으로 넣었다.

이순신 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인 만큼 갑옷 어깨부위에 은으로 만든 견룡을 달았다. 가슴 쪽에도 용 문양을 가미해 위용을 더했다.

권 감독은 "견룡의 경우 전문 액세서리 디자이너에게 의뢰했는데 한 짝에 200만 원씩의 제작비가 들었다" 며 "이순신 장군 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 씨는 400만 원을 어깨에 얹고 다닌 셈"이라고 설명했다.

조선군 갑옷은 배우들의 활동에 가능한 방해가 덜 되도록 무게가 가벼운 폴리에틸렌(PE) 소재의 편을 손으로 엮어 제작했다. 덕분에 배우 최민식 씨는 갑옷을 입고도 어머니의 위패 앞에 무릎을 꿇는 연기를 무리없이 할 수 있었다.

6개월에 걸쳐 촬영이 이어지면서 의상팀도 매일 전쟁을 치렀다. 그는 "PE 소재가 추위에 약해 겨울 전투 장면에서 갑옷이 많이 깨졌다" 며 "통상 장수 갑옷의 경우 한 벌당 2500~3000편이 사용됐는데 매일 30벌 가량은 수선해야 했고 촬영이 끝나니 성한 갑옷이 없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무채색의 조선군 갑옷과 달리 구루지마(류승룡 분)를 비롯한 왜군 장수들은 원색 갑주로 무장했다.

금색과 붉은색의 화려한 철제 갑주는 모두 권 감독이 일본 가고시마현 소재 전통 갑옷공장에서 공수한 노력의 산물이다. 전통 방식으로 제작한 철제 갑옷이다 보니 가장 무거운 와키자카(조진웅 분)의 갑주 무게는 20kg이 훌쩍 넘기도 했다.

도도 다카도라(김명곤 분) 등 주요 왜군 장수 갑주는 일본에 남아있는 사료를 바탕으로 철저히 고증을 거쳤다. 유독 화려한 구루지마의 갑주는 권 감독의 상상력이 반영됐다.

권 감독은 "구루지마는 임진왜란을 통틀어 일본 왜장 중 사망한 유일한 다이묘(영주)였는데 역사에선 지워져 가문의 문양과 이름만 알 수 있다" 며 "일본 전국시대에 전쟁의 신으로 불린 다케다 신겐을 숭상한 호전적인 장수를 가정, 그의 갑주를 바탕으로 의상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검정 털이 갈기 마냥 늘어진 구루지마의 투구는 권 감독의 역작이다. 이 투구는 배우의 눈빛과 맞물려 구루지마의 강렬한 존재감을 살려준다. 권 감독은 다케다 신겐의 투구를 모티브로 원래의 흰색 대신 검정색을 입혀 투구를 제작했다.

권 감독은 "'센' 투구에 눌리지 않은 것은 배우 류승룡 씨의 힘" 이라며 "일본인들이 봤을 때 다케다 신겐으로 착각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검은색을 선택했는데, 염색한 야크 털을 미용실에서 부분 가발을 달듯이 가닥가닥 펴서 투구에 다는 고행 끝에 완성했다"고 말했다.

왜장의 화려한 진바오리(갑옷 위에 걸쳐 입는 소매 없는 겉옷)도 모두 교토 비단으로 제작할 만큼 권 감독은 의상 세부사항에 완벽을 기했다. 의상에 공이 든 만큼 스크린에서 진면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권 감독은 "아무리 고화질의 텔레비전이 등장하더라도 영화 스크린에서 확대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며 "클로즈업 샷의 인물 의상에 실밥이 있다면 스크린에선 밧줄 굵기로 나오기 때문에 극도의 섬세함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개봉한 해적의 경우 의상 디자인 측면에선 명량보다 상상의 나래를 펼칠 여지가 많은 작품이다.

영화가 '액션 어드벤처'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권 감독은 더 가벼운 분위기의 비전투적인 의상들을 선보였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설정된 배경과 해적, 산적인 등장인물들을 고려해 다양한 복식을 따와 의상을 디자인했다.

주역인 해적단 여두목 여월(손예진 분)의 갑옷에는 비늘을 달아 아름다움과 강인함을 함께 담아냈다.

인터뷰 사진 촬영을 위해 마네킹에 여월의 옷을 입히는 권 감독의 손길은 능수능란했다. 옷걸이에 걸려있을 땐 펑퍼짐하던 상의에 허리띠를 두르고 두어번 매만지니 금새 옷맵시가 살았다. 납작하게 눌려있던 갑옷 비늘은 하나하나 손으로 눌러 입체감을 살렸다.

그는 "영화 스크린에서는 갑옷 비늘이 둥글게 나와야 질감이 산다" 며 "여월 의상에 사용된 얼룩무늬 천은 인견인데 직접 세 차례에 걸쳐 물을 들여 무늬를 냈다"고 설명했다.

해적 등장인물 의상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단주 소마(이경영 분)의 의상이다. 대양에서 활동하는 해적인 만큼 권 감독은 장신구를 활용해 보다 화려한 느낌을 부여했다.

권 감독은 이 같이 자신의 손을 거친 영화 의상들이 촬영 후엔 생명을 다하기 마련이라고 평했다. 특정한 배우가 연기하는 한 캐릭터만을 위해 특별 제작한 만큼 영화촬영 동안에만 살아있는 옷이란 설명이다.

권 감독은 새 영화를 맡을 때마다 과거의 작품은 잊기 위해 노력한다. 현재는 배우 하정우 씨가 감독을 맡은 '허삼관 매혈기'의 세계에 빠져 있다.

그동안 옷을 입힌 수많은 영화 중 유독 권 감독의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일까. 권 감독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놈놈놈)'과 '광해'를 꼽았다.

권 감독은 놈놈놈을 '영화의상 제작에서 또 하나의 눈이 뜨인 계기'로 꼽았다. 1930년 대의 다양한 인종이 얽힌 만주 벌판이란 매력적인 배경과 김지운 감독과의 교감이 발휘된 결과다. 다양한 나라의 복식을 연구해 배우 100여 명의 옷을 일일이 직접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경지로 들어설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권 감독은 '광해' 제작 후 어머니인 이해윤 선생으로부터 첫 칭찬(?)을 받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어머님께서 광해를 보시고 의상제작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칭찬과 함께 고생했다는 말씀을 하셔서 내게 각별한 작품"이라며 밝게 웃었다.


글=한경닷컴 오정민 기자, 사진=한경닷컴 진연수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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