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한국 경제 제2 도약의 길…'프로보노 퍼블리코'

입력 2014-07-27 22:27
경착륙과 중진국 함정 우려 고개
정치권과 당국 신뢰 확보 최우선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한국 경제의 앞날과 관련해 비관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단기적으로 연착륙과 경착륙 간의 논쟁 속에 갈수록 후자에 무게를 두는 시각이 늘고 있어 우려된다. 중장기적으로 지속 성장 여부와 관련해서는 ‘중진국 함정’에 걸릴 것이라는 경고도 함께 나온다.

‘중진국 함정’이란 신흥국이 경제발전 초기에는 유치단계의 이점을 누리면서 성장하다가 중진국 수준에 와서 어느 순간에 성장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현상을 말한다. 1인당 소득으로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으로 분류할 때 한국은 아직까지 중진국으로 분류된다.

한국 경제는 개발 시작 이후 주력산업이었던 제조업의 생산여건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제조업 환경이 지속해서 악화되는 것은 낮은 출산율과 인구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 특히 청년층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인력수요와 공급 간 불일치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만성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노동력에 이어 생산에 필요한 자본 측면에서도 저축률 하락이 심해지면서 갈수록 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저축률이 하락하는 요인으로 정치권의 포퓰리즘적인 사회보장지출 확대가 지목된다. 가계에선 사회안전망 강화에 따른 예비적 동기의 저축 필요성이 감소하고 소비여건이 개선되는 점이 저축률을 떨어뜨리고 있다. 기업의 현금보유는 사상 최대규모에 달한다.

특히 기업은 ‘환율 쇼크’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 원화 가치는 달러화, 엔화, 위안화, 유로화 등 주요 통화에 비해 모두 강세인 점이 종전과 다르다. 한국 기업들이 더 서운하게 생각하는 것은 ‘원화 절상’이 주변국의 정책요인이 강한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 1기 경제팀이 안이하게 대응한 면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부패와 뇌물 사건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한 나라의 뇌물과 부패 정도는 정치적 영향력과 행정규제에 비례한다. 독점적 이윤인 경제적 지대(rent)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를 얻어내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은 치열한 로비활동을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뇌물과 부패가 만연되는 소위 ‘지대추구형 사회(rent oriented society)’가 된다.

대외적으로는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높아진 국제위상에 맞게 내수시장이 발전되지 않으면서 통상마찰도 잦아지고 있다. 특히 기업 간 불균형이 심화된 상황에서 특정 기업들이 세계 최고의 반열 위에 올라간 것에 따른 착시현상까지 겹친 점도 부담이다. 주요 교역국으로부터 통상마찰의 표적이 되고 있는 점은 한국 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가 장기간 침체국면에 빠져들 때 겪었던 고질적인 5대 함정이 우리 경제 내부에서 나타나면서 ‘잃어버린 20년’에 대한 우려가 가세하고 있는 점이다. 5대 함정이란 무엇보다 정부의 의도대로 경제주체들이 반응하지 않아 모든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정책 함정’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경기부양 방안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화정책은 ‘유동성 함정’에 빠져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정책과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국가채무와 가계부채가 각각 1000조원을 넘어서면서 소비나 투자,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 지출까지 못하는 ‘빚의 함정’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경제구조를 개혁하는 문제도 최종 목표인 경쟁력 개선 여부와 관계없이 구호만 반복적으로 외치는 ‘구조조정 함정’에 빠져 있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우려다. 이 상황에 놓이면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해 느끼는 불확실성은 증대돼 예측기관들의 전망이 또 다른 전망을 불러일으키는 ‘불확실성 함정’에 빠지게 된다.

정책당국이나 정책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뢰도 종전만 못하다. 특히 정치권에 대해 그렇다. 당리당략에만 몰두한 탓에 국민과 경제는 뒷전이다. 신뢰 회복의 ‘골든 타임’까지 놓쳐 이제는 우리도 일본처럼 아무리 좋은 정책신호를 준다 하더라도 정책 수용층은 정작 반응하지 않는 ‘좀비 국면’에 빠져 들고 있다.

통화승수, 통화유통속도 등 각종 경제활력지표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한번 해보자(can do)’ 하는 심리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2기 경제팀이 금리를 내리고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경기회복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사례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모두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많은 정책을 내놓기보다 정치권과 정책당국의 ‘마라도나 효과(마라도나에 대한 믿음이 강해 수비수가 미리 행동하면 다른 쪽에 공간이 생겨 골 넣기가 쉽다는 의미)’가 절실하다. 이를 바탕으로 정책 수용층이 ‘프로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공익을 위하여)’ 정신을 발휘한다면 ‘중진국 함정’과 ‘잃어버린 20년’ 우려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